Top 27 애굽 에서 가나안 까지 거리 Top Answer Up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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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성경지리 5회 [출애굽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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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의 의미 / 출애굽기 16장 13절 – 21절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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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의 의미 / 출애굽기 16장 13절 - 21절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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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루 길과 40년의 유랑 신 1:1-4 8. 28. 14 – 기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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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루 길과 40년의 유랑    신 1:1-4        8. 28. 14 - 기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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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우회 (출 13:17~22)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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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우회 (출 13:17~22) - 목회자료 - 기독교 멀티미디어 사역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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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까지 40년이나 걸려요? < 교회상식 속풀이 < 신학과 영성 < 기사본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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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땅까지 40년이나 걸려요? < 교회상식 속풀이 < 신학과 영성 < 기사본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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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이동 시간 고려하여 성경 다시 읽기(7) < 연재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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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거리와 이동 시간 고려하여 성경 다시 읽기(7) < 연재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까지 열하루 길(신 1:2)이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발 알라우즈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는 한 달은 족히 ... 저자 김승학 씨는 지나칠 정도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디안 땅을 중심으로 출애굽 여정을 정리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 거리 개념이나 계절, 이동 시간에 무관심해 보인다. (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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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이동 시간 고려하여 성경 다시 읽기(7) < 연재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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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가나안은 무엇입니까? – Celebrity.fm – #1 공식 스타, 비즈니스 및 피플 네트워크, Wiki, 성공 사례, 전기 및 인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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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2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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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2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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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의 의미 / 출애굽기 16장 13절 – 21절

오늘 본문에는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만나를 먹이시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약 한 달 반 정도가 지났을 때입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아무리 양식을 많이 가지고 나왔다 하더라도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 반 정도가 지났기 때문에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양식이 다 떨어져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애굽에서 그냥 나온 것은 아닙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는 약 320km정도고 실제로 행진한 거리는 약 640km정도입니다.

이 정도 거리라면 걸어서 한 달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넉넉하게 한 달 반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의 예상이 빗나간 겁니다.

우리들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앞으로 행복하게 살려고, 평안하게 살려고, 안전하게 살려고 보험도 들고, 연금도 들고, 적금도 들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합니다.

이렇게 준비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준비하면 평안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준비하면 안전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행복하게 살려고, 평안하게 살려고, 안전하게 살려고 열심히 비축하고 준비했는데 내 힘으로 비축해 놓은 행복이, 내 힘으로 비축해 놓은 평안이, 내 힘으로 비축해 놓은 안전이 얼마 오래 가지 못해서 떨어질 것 같아서 불안해합니다.

지금 당장에는 굶지 않지만 앞으로 굶을 것 같아서 불안하고, 지금 당장에는 아프지 않지만 앞으로 아플 것 같아서 불안하고, 지금 당장에는 문제가 없지만 노후에는 살기 힘들 것 같아서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지금 비축해 놓은 행복과 평안과 안전이 곧 떨어질 것 같아서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가리켜 광야에 비유하고 사막에 비유합니다.

광야와 사막의 특징은 결핍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이사야 43장 19절에서 약속하시기를 그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 결핍의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

을 떠나

광야

로 갈 때 처음부터

광야

에서

40

년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간 것이 아닙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오래 있어야 한 달 반만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식량을 한 달 반치만 가져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광야에서 40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광야의 결핍을 만나고 사막의 결핍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때는 메추라기 로 먹이시고 , 어떤 때는 만나 로 먹이시고 , 어떤 때는 바위에서 터져 나온 생수 로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입고 나온 옷은 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께서는 양식이 떨어져 인생이 결핍의 광야가 되고 결핍의 사막이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길을 내주시고 강이 흐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만나는 그렇게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지금도 시나이 반도 내륙 지방에서 흔하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연지벌레라고 하는 벌레에서 나오는 분비물이 나뭇잎에 맺혔다가 땅에 떨어진 다음에 기온이 내려가는 밤중에 단단하게 굳는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아침에 그걸 모아서 먹을 수 있답니다.

그런데 이 알맹이들은 온도가 조금만 올라도 녹기 때문에 해가 뜨면 얼마 있지 않아서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만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해서 특별하게 일으키신 초자연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시나이 반도 내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침마다 먹을 수 있는 자연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 장정만 60만 명입니다.

아이들과 여자들을 다 합하면 족히 200만 명이 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이신 사건이 초자연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말에는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분이 말하기를 광야에서 60만 명은 고사하고 한 가족도 살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비슷한 현상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3460년 전에 광야에서 경험했던 만나 사건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 만나 사건은 절대로 모든 사람들이 평범하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자연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만나는 어떤 메시지를 품고 있을까요?

크게 두 가지의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만나

가 품고 있는 첫 번째 메시지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데 그 채우시는 방법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채우실 때도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채우실 때도 있다는 것

입니다

.

예를 들면 만나를 주시는 방법과 같은 방법입니다.

본문 13절로 14절을 보겠습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고 그 이슬이 마른 다음에 보니까 그 자리에 빵가루 같은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거둬다가 먹었더니 그것이 식량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먹기는 먹지만 그것의 이름은 모릅니다.

그래서 “이게 도대체 뭐야?”라고 서로 물었는데 이것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어로 ‘만나’의 뜻이 ‘이게 도대체 뭐야?’라는 뜻입니다.

‘이게 도대체 뭐야?’라고 할 정도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독특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 필요로 하는 것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로는 ‘입는 것’과 ‘먹는 것’과 ‘살 곳’, 즉 의(衣) 식(食) 주(住)의 문제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의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어떤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을 필요로 합니다.

의(衣)식(食)주(住)의 문제와 안전의 문제,

젊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자기 힘으로 다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기 필요를 자기가 채우려고 애굽에서 나올 때 있는 힘껏 먹을 것을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길어야 한 달 반의 필요를 채울 뿐이었습니다.

그 이상의 필요를 채울 능력은 그들 자신에게 없었습니다.

그 이상의 필요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워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채워주시는 방법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자신의 필요를 채워달라고 기도하면서 그 채우는 방법까지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느 대학을 가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 아무개랑 꼭 결혼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 어느 회사에 꼭 취직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 빚을 다 갚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

방법까지 내가 결정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저 내가 결정한 방법대로 움직여주시기만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면 나의 필요를, 나의 부족한 것을 그냥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면 물론 내가 생각했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채우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내가 생각한 방법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때가 더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대받은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잔치가 중단되어야 한다는 뜻이고 기쁨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혼인잔치를 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문제가 곧 닥쳐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는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잔치는 중단될 것이고 기쁨도 중단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마리아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 잔치가, 그 즐거움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인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만 말하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방법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만드신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 중에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서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해결하실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했던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가운데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기도가 잘 안 된다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기도가 잘 안 되는지 아십니까?

나의 필요를 말씀드리는 동시에 해결방법까지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해주시기를 원하니까 기도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방법까지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필요만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데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이 찬양이 생각났습니다.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내 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슬픔 대신 희락을 재 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을 찬송의 옷을 주셨네

내가 하는 일은 그냥 주님을 향하여 손을 높이 들고 나의 필요를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

내가 하는 일은 그냥 주님을 향하여 나의 마음을 활짝 여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근심을 찬송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

와 그의 시종이었던

게하시

를 보십시오

.

아람나라의 군대가 엘리사 선지자와 시종이 있는 도단 성을 겹겹으로 포위했습니다.

이 때 이 광경을 본 사환 게하시가 우리는 이제 다 죽었다고 울고불고 하니까 엘리사 선지자가 뭐라고 기도합니까?

열왕기하 6장 17절을 보겠습니다.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자신의 필요를 자신의 능력으로만 채우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필요를 채울 수 없게 되면 걱정을 하고, 두려워하고, 낙심을 하고, 절망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보호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만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셔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 못할 방법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만나로 먹이시는 하나님’이란 무슨 뜻입니까?

방법까지 우리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4장 6절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신다고요?

빌립보서 4장 19절을 보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그 다음

만나가 주는 두 번째 메시지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통해서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

입니다

.

본문 21절을 보겠습니다.

“무리가 아침마다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고 햇볕이 뜨겁게 쬐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만나를 매일 아침마다 주셨습니다.

이것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표현에 의하면 ‘일용할 양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한 달 치를 한꺼번에 주시거나, 두 달 치를 한꺼번에 주시지 않으시고 왜 번거롭게 매일 매일 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많이 주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매일 만나를 거두면서 매일 매일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셨고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매일 기도하고 매일 매일 영의 양식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매일 매일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와 교제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출애굽기 16장에는 만나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일 동안은 한 사람에 1오멜 씩 만나를 거두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순종하여 식구 한 사람에 1오멜 씩 만나를 거두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않으면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오멜’이라는 단위는 애굽에서 사용하던 단위로 2.2리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더 거두어다가 아침까지 남겨두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

이들이 왜 더 거두어다가 남겨두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린 만나가 내일은 안 내릴 수도 있다고 하나님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6일째 되는 날에는 안식일 것까지 해서 이틀 치를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순종하여 식구 한 사람에 2오멜 씩을 거두면 됩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러 나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나가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나갔다가 헛걸음을 했습니다.

이 만나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너무 욕심내어 거두지 말 것과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러 나가지 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불순종하여 거두는 것은 헛수고가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의 명령이 그렇게 어려운 명령이 아니라 단순한 명령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만나를 거두면서도 과연 내일도 만나가 내릴까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도 나가면 만나를 거둘 수 있을까 나가봤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기의 노력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한 것이 없으면 하나님을 잘 찾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매일 주심으로 매일 교제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시편 8편 4절을 보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결정하는 대로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생각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자기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주셨기 때문에 ,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셨기 때문에 , 하나님께서 나를 참아주시고 기다려 주셨기 때문에 자기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역대상 17장 16절에서 자신에게 하나님의 복이 쏟아져서 만사가 잘 풀리는 순간에도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에게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저는 다윗의 이 고백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다윗은 목동 출신입니다.

목동은 당시 직업 중에 가장 비천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천한 목동 출신인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이 된 이후에도 자기가 왕이 된 것이 자기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제가 누구이길래 저를 이렇게 존귀한 자들같이 여기셔서 왕까지 되게 하셨습니까?”

저는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변질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이유는,

내가 지금 이렇게 돈을 버는 이유는,

내게 지금 이렇게 집이 있는 이유는,

내게 지금 이렇게 직장이 있는 이유는,

내게 지금 이렇게 사랑하는 가정이 있는 이유는,

내게 지금 이렇게 건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으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온전하게 예배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 중에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초라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염려하지 않는 사람,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여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하나님 이외의 다른 방법을 찾아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초라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여 우리 앞을 가로막은 인생의 요단강을 하나님의 말씀을 메고 담대하게 믿음과 순종의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열하루 길과 40년의 유랑 신 1:1-4 8. 28. 14

열하루 길과 40년의 유랑 신 1:1-4 8. 28. 14

얼마 전 영국의 작은 도시에서 70세 노인과 63세 여인의 결혼이 작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들의 결혼은 일상적인 남녀의 평범한 결혼일 수 있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극적인 사건이어서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은 20대에 스웨덴에서 결혼을 약속하고 열렬히 사랑하던 관계였는데 부모의 반대로 헤어져서, 남자는 비행사로 변호사로 성공하여 부모가 짝지어 주는 다른 미모의 여인과 결혼해서 세 자녀를 둔 가장으로 40여년을 살다가 몇 년 전에 부인이 세상을 떠났는데, 영국에 살고 있는 아들 집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식당에서 40년 전에 사랑했던 옛 애인을 만나 그때까지 자기만을 생각하며 노처녀로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자 급하게 가까워져 결혼이 된 것이다. 부모의 반대가 없었다면 40여 년 전에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을 두 사람이 유럽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영국에서 노후결혼이 되므로 화제가 됐다.

만일(萬一) 우리 중에 1999년에 변호사가 됐어야 할 사람이 2014년 8월 31일, 아직까지 변호사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면, 만일 30년, 40년 전에 결혼했을 두 사람이 40여 년 만에 극적으로 다시 만나는 상황이 된다면, 그리고 7-8년 전에 의사나 간호사 회계사가 돼 있어야 할 사람이 아직까지 직장이 없어 쉬고 있다면, 그리고 20-30년 전에 사업에 성공하고 가정이 안정되어 지금쯤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있어야 할 사람이 지금까지도 백수로 동가식서가숙하며 떠돌이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불행한 사람, 미련한 사람, 실패한 사람,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모세는 본문에서 300만 이스라엘이 지금 그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다고 설교하고 있다.

열하루 길과 40년의 유랑

본문은 출애굽 제 40년 11월 1일(신 1; 3)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생활을 거의 다 마치고 가나안 땅이 마주 보이는 요단 동편 아라바 평야에 다섯 주간 머무를 때, 모세가 출애굽 1.5세와 2세들 300만에게 세 번에 걸쳐서 설교한 내용이다.

모세는 너희 조상들이 40년 전에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했다면, 출애굽 후, 열하루 정도면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만 40년 열한 달이 걸린 지금까지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곳에 있다고 설교하면서 한 달 후에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면 너희는 너희 조상들처럼 다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참고로 신명기의 내용은 ⑴ 1-4장까지는 모세의 첫 번째 설교로 지난 40년 동안의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회고하면서 하나님께 복종할 것을 권고한 말씀이고 ⑵ 두 번째 설교인 5-26장까지는 십계명을 비롯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종교법과 정치법과 여러 가지 사회법을 가르친 말씀이며 ⑶ 세 번째 설교인 27-30장은 갱신된 언약에 엄숙하게 복종할 것을 설교한 것이다. 그리고 31장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한 것과 백성들을 향한 모세의 장려(獎勵), 32장은 노래의 말씀으로 장차 이뤄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모세의 감격적인 노래, 33장은 죽음을 바라보며 축복의 말을 전한 모세의 임종고별사, 34장은 성령의 감동으로 자신의 죽음을 미리 기록한 내용이다.

요단 동편(Trans Jordan; 트랜스 요르단) 모압 평지에서 설교했던 총 34장에, 959절, 28,461단어로 이루어진 방대한 설교를 세 번의 강론으로 마친 것은 당시 모세의 설교가 굉장히 길었음을 의미한다. 죽음을 한두 달 앞둔 120세 노옹이 백발의 머리와 흰 수염을 나부끼며 이렇게 길게 설교한 것은 그만큼 신명기가 중요한 설교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남녀노소 300만 백성들이 모압 평지 잔디밭이나 나무 그늘이나 바위 위에 앉거나 서서 그 긴 설교를 들은 것은 15분, 20분 설교를 일등설교로 좋아하는 현대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좋은 귀감이 아닐 수 없다.

모세는 율법을 받은 시내산에서 가나안의 남쪽 경계선인 가데스 바네아까지 그리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신 1: 2-3, 2: 13-14)는 장정들의 걸음으로는 일주일 정도면 충분하고, 남녀노인들과 여자와 어린아이와 가축들이 하루 24km(60리)를 걷는다면 대략 열하루 정도면 충분할 거리를 이스라엘은 38년이 걸렸다고 했다(이스라엘이 이집트 라암셋을 출발한 날은 출애굽 제 1년 1월 15일(민 32: 3)이며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선 때는 출애굽 41년 1월 10일이니(수 4; 19) 이스라엘이 광야에 머문 기간은 5일이 부족한 40년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고 성막에 대한 계시를 받으며 성막건축 준비를 했던 1년이 넘는 시내산에서의 체류기간을 합쳐 광야생활이 40년이 걸리게 된 이유를 모세는 이렇게 설명한다 ⑴ 열하루 만에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은 원래 하나님의 약속이었다(1:19- 23) ⑵ 40일 동안의 가나안 정탐은 불신앙에서 시작된 것이었다(1:22-25) 1) 어느 길로 올라갈 것인가 2) 어느 성읍으로 먼저 들어갈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 했던 가나안 정탐은 좋은 목적으로 시작됐으나 정탐의 결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1:24-28) 처음에 의기충천하고 기분 좋게 시작한 가나안 정탐의 결과는 ① 가나안으로 올라가기를 즐겨하지 않게 되다 ② 원래의 하나님의 명령과 계획을 거역하게 되다 ③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고 그들 스스로가 움츠러들어 방에 콕 박혀 있는 사람인‘방콕사람’이 되게 했다. 그들은 원망하기를“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한다”“야훼께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죽이려고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셨다고 원망하다 ④ 그리고 우리는 메뚜기 같다(스스로 보기에도…그들이 보기에도…)는 메뚜기 신드롬 절망에 빠진다.

그렇다. 아무리 귀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라도 그 약속을 말씀 그대로 믿지 않고 믿음 속에 인간생각이 들어가면, 삽시간에 한 방울의 잉크가 병의 물을 파랗게 물들이듯, 마음속에 불신앙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고 비겁한 사람, 겁쟁이, 부정적인 사람,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된다. 눈에는 아무 것도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들리지 않으며 손에는 아무 것도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약속 그대로 믿고 받아드려 아멘으로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우리는 이 사건과 모세설교를 통해 몇 가지 귀한 교훈을 받는다.

1. 믿음은 인간의 토를 달지 않는 것이다(21-22)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었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너희가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회보케 하자 하기에…”

그렇다. 가나안 땅은 원래 이스라엘이 무조건 올라가서 내 물건 내가 취하듯 취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었다. 신 1; 8의 들어가서 얻으라(Go in and posses the land)는 말은“그 땅은 이미 너희에게 준 것이니 가서 너희의 소유로 삼아 이용하라”는 의미이지‘가서 정복하라, 싸워서 쟁취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가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Go up, take possession. Do not fear or be dismayed)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주신 땅이지만 그래도 먼저 그곳을 정탐하는 것이 순서라며 그럴듯한 자기들의 의견을 내 놓았다. 그때 만일 모세가 가나안을 정탐하자는 백성들의 말을 거절하고 믿음으로 들어갔다면 40년 전에 이미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땅이 됐을 것이고 모세는 가나안의 통치자가 됐을 것이다.

그렇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내 의견과 내 생각, 내 의지와 내 경험, 그리고 내 이론의 토를 달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만, 그랬지만, 그렇게 쓰여 있지만, 그런데…’가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We are destroying speculations and every lofty thing raised up against the knowledge of God)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것”(고후 10:4-5)이라고 했다.

모든 이론으로 무장된 강력한 진을 파하는 것, 모든 타당한 이론들을 파괴하는 것,

하나님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생각들을 파괴하고 그리스도 예수 앞에 내 생각을 굴복시키는 것….이것이 우리의 영적 싸움, 믿음의 싸움이고, 기도의 싸움, 찬양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믿음으로 인간의 이론을 이긴 자만이 축복의 땅에 들어간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기적들을 체험할 수 있다. 인간이론을 파괴하고 우리 생각을 예수 앞에 굴복시키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들이 넘치게 나타나는 삶이되기를 축원한다.

성경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을 성수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사람의 이론은 주일 성수를 하면 밥을 굶게 된다, 수입이 적어져 생활이 안 된다고 한다. 성경은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십일조를 드리고 나면 당장 내 살 길이 막연해 진다고 한다.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해 줄 것이다, 네가 선교, 봉사, 헌신, 봉사, 충성, 기도하면 다른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한다. 그러나 내 이성과 내 생각, 내 현실은 그것보다는 돈 버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모든 이론들, 정당한 이유들, 모든 이치에 맞고 타당한 생각들…이런 것들이 당신의 믿음을 방해하고 은혜를 약하게 하며 당신을 축복과 기적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 물어보자. 당신이 지금까지 정당한 이유를 대서 해결된 것이 무엇인가? 당신이 고집했던 이론이 당신에게 어떤 축복을 가져다주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당신 이론과 생각대로 되어 진 일이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생각을 파괴하므로 말씀이 능력을 나타내는 역사들이 일어나길 바라며, 성령의 강력한 소원 앞에 내 이론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므로 그분의 기적들이 나타나길 축원한다.

2. 믿음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신 1:28)

10명의 정탐들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우리가 가서 보니 가나안은 땅이 비옥하고 농사도 잘되고 짐승들도 키우기에 좋은 땅인데 그곳 원주민은 기골이 장대한 거인들이고 힘이 괴력의 장사며 그들이 지은 집들도 크고 견고하다. 우리는 도저히 그들을 이길 수 없고 그 땅을 소유할 수 가 없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하나같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불평했다.

하나님은 정탐보고의 그날, 부정적인 소식을 전한 정탐꾼 열 명을 죽이셨고 그들의 말을 듣고 낙심한 이스라엘 백성을 정탐 40일을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해 40년을 광야에서 유리방황하게 진노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이다.

그렇다. 믿음은 보고 듣는 것으로 일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귀에는 어떻게 들리든지, 눈에는 어떻게 보이든지, 내 감각은 어떻게 느끼든지 오직 말씀 그대로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찾으면 반드시 그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내가 새벽기도를 하고, 내가 금식기도를 하며, 내가 말씀대로 주일을 성수하고, 말씀대로 십일조를 성수하면… 상급으로 반드시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반드시 내 남편의 병, 내 딸의 질병을 고쳐주신다, ‘내 문제가 해결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믿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요, 응답받는 믿음이다.

3. 믿음은 긍정적인 언어 사용이다(26-27절)

이스라엘 백성은 정탐들의 보고를 듣자마자 부정적인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430년을 기다리고 기다리셔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 광야로 이끌어 내신 것을 자기들을 가나안의 아모리 족속, 원수들에게 죽게 하시려고 인도한 것이라니! 이 얼마나 미련하고 통탄스러운 말이며,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불경한 언사인가? 결국 그들은 자기들의 부정적인 원망의 말대로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였다.

그러나 창 50:24-26, 출 13:19, 수 24:32를 보자. 요셉은 110세에 죽으면서 “하나님이 반드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낼 것이니 그때에 너희는 나의 시체 미이라를 애굽에서 취하여 가나안으로 옮겨서 그곳에 장사 지내 달라”고 유언했는데 요셉의 믿음대로 그렇게 되었다.

그렇다. 부정적인 언어, 원망의 말은 당신의 믿음을 죽이는 독약이다. 그러나 믿 음은 긍정적인 언어 사용이고 긍정적 언어 사용은 축복의 지름길이다. 그래서 우 리가 긍정적인 언어와 생산적이며 낙관적인 언어를 사용할 때, 내게로 축복들이 모여 온다(특히 ‘감사한다’는 언어를 많이 사용할 것이다.)

유대인 랍비 아키바가 여행을 하고 있었다. 안내자로 개 한 마리가 그와 동행했고 손에는 램프를 가지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 밤이 되자 아키바는 한 채의 헛간을 발견하고 거기서 자기로 했다. 등불을 켜고 책을 읽으려하는데 바람이 불어 램프가 꺼졌다. 몇 번이나 그렇게 되자 책 읽기를 포기하고 할 수 없이 잠을 잤다. 그런데 개가 자는 동안 이번엔 늑대가 와서 개를 죽여 버렸다. 아침이 되자 그는 램프를 가지고 홀로 길을 떠났다. 그런데 마을에 도착해보니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제야 그는 전날 밤 도둑떼가 이 마을에 쳐들어와 집을 파괴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인 것을 알게 됐다. 어제 밤에 만일(萬一) 램프불이 바람에 꺼지지 않았더라면 그도 도둑들에게 발견돼 죽었을 것이고, 어제 밤에 만일(萬一) 개가 살아 있어 짖었더라면 도둑들이 몰려와 그를 죽였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랍비 아키바는 이 일을 통해 모든 것을 감사하고 모든 것을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사람의 몸 중에서 나이가 들어도 세월을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부위가 있는데 그것은 몸 안에 있는 근육(筋肉)이다. 이 Muscle은 80대 노인도 운동을 하면 늘어나고 단단해 지고 강해진다(2008년에 내가 목사님들과 배구를 하다가 오른쪽 엄지손가락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거의 두 달 동안 운동을 못했더니 돌덩이처럼 단단하던 근육이 바람 빠진 공처럼 말랑말랑해졌었다. 그래서 손가락골절사고 3주 후부터는 왼손(한 손)으로 Push up을 하루에 1000번씩을 했더니 조금 나아지다가 한 달 후부터 양손으로 Push up을 2000번씩 그리고 역기를 2000번씩 들고나니 다시 근육이 단단해 진적이 있다)

사람의 얼굴에 있는 30개의 근육은 웃음이란 운동으로 표정근육을 발달시키면 돈이 안 드는 최고의 성형수술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하루에 10분, 15분 동안 웃기만 해도 비싼 화장품을 쓰고 값비싼 로션을 바르는 것 보다 훨씬 나은 최고의 미인, 탄력 있는 얼굴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얼굴은 대기온도의 영향으로 누구나 화씨 86도를 유지해야 얼굴 근육이 팽팽해지는데 표정을 어둡게 하든지 수심이 가득하면 얼굴에 주름살이 많이 생기고 쉽게 늙지만 반대로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활기차게 표정을 지으면 얼굴 근육이 탱탱하게 젊어지고 주름도 생기지 않고 늙어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밝고 환하게 웃거나 큰소리로 웃으면 2분 뒤에는 표정근이 많이 움직인 눈과 입술 주변 혈관이 확장돼 혈액순환이 활발해져 붉게 달아오르고, 10분 뒤에는 얼굴 전체의 온도가 올라 혈색이 좋아지는 효과를 기대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기분 좋게 웃는 표정근 운동은 뇌의 온도를 낮춰 정서적인 안정도 주고 혈압까지 낮게 해준다. 심지어 우습진 않지만 의식적으로 웃기만 해도 얼굴 근육이 움직이면서 같은 효과를 가져 온다고 한다. 그래서 웃음은 돈 안 드는 최고의 성형수술이라고 한다.

긍정적인 말을 하거나 낙천적인 언어를 사용하거나 믿음으로 감사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겐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 미국에서 6세에서 16세까지 학생 1500명을 대상으로 수십 년 동안 연구 조사한 내용이다. 1500명 아이들은 백인이며 머리가 뛰어나고 중산층 자녀들로서 부모와 교사들로부터 25가지의 성격적 특성을 평가받았다. 그들의 미적 감각, 재주, 유머감각 그리고 그들의 생활환경이나 사건, 그들의 체험들까지 다양하게 조사했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조사하는 동안 많은 실험대상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학자들의 관심은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아있는가 였는데 놀랍게도 1500명의 사람들 중에서 성실한 사람과 낙천적인 사람만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더라는 것이다. 오늘 인생을 성공하며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가길 원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긍정적이며 낙천적인 언어 사용으로 건강하게 장수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4. 하나님은 나의 Navigator이시다.

이젠 미국에도 Navigator가 보편화 돼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한국은 Navigator 만인 공유시대이다. 자동차에 70-80%는 네비게이토가 있을 정도로 네비게이토를 차마다 가지고 있다. 운전 중에 Navigator는 계속해서

“잠시 후에 시속 100키로 구간입니다. 속도를 줄이십시오”

“500미터 앞에서 좌회전 하십시오” “300미터 앞에서 나가십시오”

얼마나 친절한지 모른다. 너무 친절하게 자주 말을 해줘 나중에는 짜증나고 피곤할 지경이다. 이렇게 네비게이토(자동 조종장치)가 속도와 표시판을 지시하며 방향까지 지시해 준다. 심지어는 네비게이토의 지시를 벗어나 잘못된 길을 들어갔을 때는 그곳에서부터 Recalculate(다시 계산)해서 목적지의 방향을 다시 정해 주고 갈 길을 안내해 주기까지 한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와 당신의 Navigator(조종자)이시다. 내가 비록 불순종한 이스라엘처럼 열하루 길을 40년의 유랑 길을 선택했어도 하나님은 거기서 다시 나의 길을 정하시고 안내해 주신다.

40여 년 전인 1975년 1월 14일은 내가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으로 미국에 들어온 날이다. 충북 단양, 소백산 깊은 산골짜기에서 7년 동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린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당시 나는 7년의 기다림이 너무 힘이 들어 그곳을 떠나려고 보따리를 일곱 번이나 쌌었다) 마지막 1년은 정말 피를 말리며 잠을 못자는 시간들이었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내가 미국 방문 초청장을 받은 것을 부러워하며 내가 미국 가는 것이 결정된 것처럼 생각했지만 당시 미국 비자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든 때여서 나는 초청장을 받은 2월에서 비자 받는 12월까지 10개월 동안, 정말 어둡고 힘든 긴 터널,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기간이었다. 그래서 우국기도원으로, 삼각산으로, 단양으로, 서울로…금식기도로, 철야기도로, 작정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기도하면서도 기도할 때는 마음이 평안해지지만 평상시는 밥맛을 잃고 음식을 먹지 못했고 밤에는 잡을 이루지 못해 고생하는 그래서 평생 처음 불면증으로 몇 달 동안 잠을 못 잤던 기간이었다. 심지어는 몇 달 동안 악몽에 시달리는 고통도 겪었다. 그러다가 천신만고 끝에 기적적으로 그해 12월 14일 비자를 받았을 때에 그 기쁨은 무어라 형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1975년 1월 14일, 비자 받은 지 한 달 만에 미국을 들어왔다. 하와이를 거쳐 밤 11시에 Los Angeles 국제공항에 내렸을 때, 주머니엔 단돈 120불이 나의 총재산이었다. 그날 밤 나를 초청해준 미국목사 친구의 안내를 받고, 방향도 모른 채 얼떨결에 고속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새벽에 초청자의 집에 도착해서 내 비자를 보니 미국 체류기간이 한 달 6일, 비자 만기일이 2월 20일이어서 미국 목사와 함께 이민국, 신학대학교…를 다니며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비자 연기 방법이나 영주권 신청은 꿈도 꿀 수 없는 절망적인 환경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 오면 자기 교단 신학대학교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던 미국인 목사가 비자 만료 3일을 남겨두고 5시간을 드라이브 해 나를 Los Angeles, Western 길거리에 내려놓고‘미안하다’며 작별인사를 하고 자기 집으로 가 버렸을 때는 정말 내겐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학생비자와 영주권을 얻기 위해 무거운 이민가방을 싣고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59시간, 다시 72시간 그리고 다시 39시간을 타고 Los Angeles에서 미 중 부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까지. 미주리에서 미 서북부 워싱턴 주 시애틀, 그리 고 시애틀에서 다시 미 서남부 샌디에이고에 도착한 3개월 동안의 떠돌이 생활 은 고난의 대장정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미국인 목사가 나를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LA에 내려놓고 떠날 때, ‘미국에 남느냐, 한국으로 돌아가느냐’를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고 응답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 내 생각은“7년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서 들어온 미국이고,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게 비자를 받고 들어왔는데 이제 한국으로 다시 나가라니… 차라리 불법체류자가 돼 추방을 당하더라도 아니 죽더라도 나는 한국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나로썬 도저히 납득이나 수긍이 안 되는 하나님의 응답(말씀)이었다.

무엇보다도 김포공항에서 나를 부러워하며 배웅해준 수많은 동료 목사들(그동안 7년 후에 내가 미국에 갈 것이란 내 말을 듣고 믿었던 친구들)과 목사의 길을 반대했다가 내가 당당하게 미국을 떠나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한 부모친척들(전도)을 생각해서라도 당시 나의 자존심은 그것이 비록 하나님의 응답이라도 그것을 아멘으로 받아 드릴 여유가 없었다.

39년이 지나 넉 달이 지나면 미국생활 40년이 다 되는 지금,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내 믿음으로 미국에 남아 지금까지 살아온 오늘의 나의 현실을 감사로 받아 드리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그 때 왜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는가?’라는 일말의 작은 후회가 남아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 하나님이 내게 주셨던 크고 강한 믿음, 나의 기질, 추진력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생각해볼 때, ‘만일 그때 내가 하나님께 순종해 한국으로 돌아갔더라면 지금쯤 한 시대를 풍미하는 성공한 목회자와 부흥사로 한국 교회에 우뚝 서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뜬 구름처럼 스쳐가기 때문이다. 본문의 열하루가 40년이 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느끼는 나의 감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Navigator이심을 생각할 때,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른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을 때, 거기서부터 시작해 목적지의 방향을 다시 설정해주는 Navigator처럼, 내가 39년 전에 순간의 실수와 무지함과 고집으로 나의 길을 잘못 선택했지만, 거기서부터 내 인생의 방향과 사명의 방향을 더 나은 쪽으로 다시 설정하시고 인도하여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이셨기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 내 생애를 인도해 영광의 도구로 써주실 나의 좋으신 하나님, 내가 생명으로 섬기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내 어찌 감사하며 기뻐하지 않겠는가?

나의 Navigator요 Navigation이신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수많은 오묘한 말씀들과 비밀들을 깨닫게 하셨고 많은 약속들을 주셨으니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감사의 조건이 충분하고 영원하다. 그런데 나의 Navigator이신 내 하나님께서 나의 먼 장래까지 꿈과 계시들로 보여 주시고 그날의 영광을 약속해 주셨으니“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할 것”(Yet I will rejoice in the Lord, I will joy in the God of my salvation;합 3:17-18)은 당연한 일이다.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일 외에 그 무엇을 하나님과 주님께 올려드릴 것이 있겠는가?

오늘 나처럼 열하루가 40년이 됐다고 생각되는 성도 여러분, 열하루가 14400일의 40년과 38년의 13680일로, 열하루의 264시간이 345,600시간으로 기도응답과 축복응답의 기간이 연장된 상황 속에 있는 성도 여러분, 11m짜리 고무줄을 14,400m로 잡아 늘인다면 그 고무줄이 팽팽하게 늘어나야 하니 고무줄은 얼마나 위험하고 초조하며 긴장되겠는가? 연장된 그 모든 세월들이 긴장의 연속이요 괴로움과 답답함과 스트레스의 연속일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당신이 그 아픔과 긴장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감사하자! 당신이 나처럼 감사할 이유는 하나님은 당신의 Navigation과 Navigator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20년 전, 10년 전에 한국에서 남들처럼 큰 목회를 하는 목사, 큰 부흥사가 되지 못했어도 그래서 유명한 목사가 되지 못했어도 내 인생의 Navigator이신 하나님은 그 대신 또 다른 하나님의 계획을 정하셨기 때문에 감사한다. 하나님은 나의 Navigation이시며 Navigator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Navigator이시다.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인하여 그분을 송축하자. 이 축복 대신 저 축복을 준비하시고, 이 은혜 대신 저 은혜를 예비하신 신비하고 오묘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인하여 그분을 높이자!

그렇다. 열하루가 40년, 38년이 된 것이 결코 저주만은 아니다. 이번 달의 사업성공이 내년으로 연기된 것이 결코 실패만은 아니다. 10년 전에 받을 축복이 1년 후, 5년 후로 연기된 것이 결코 저주나 실패만은 아니다. 내 생각보다 탁월하신 하나님의 생각, 내 계획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니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자.

이스라엘의 우회 (출 13:17~22)

이스라엘의 우회 (출 13:17~22)

❚거룩한 우회

운전을 하다보면 가끔 길이 막혀 있고 표지판에 “우회하시오”(迂廻, 멀 우, 돌 회 자를 쓰며 영어로는 detour라고 하지요)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길은 안 되니 다른 길, 먼 길로 빙 돌아가세요.”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 시간도 낭비하는 것 같고 “지금 바쁜데 왜 돌아가라는 거야?” 하고 솔직히 짜증도 나지요. 하지만 그 우회하라는 표지판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도로공사를 하고 있든지 안전 문제가 있든지 말입니다. “에이 재수 없어, 바쁜데 뭐야” 하고 그 길로 강행하게 되면 산사태로 끊긴 길을 만나든지 큰 코 다치게 됩니다. 그러니까 고집 부리고 내 뜻대로 하려고 들지 말고 “돌아가시오” 하고 좋은 말로 할 때 잘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회(detour)입니다.

성경에도 이 ‘우회’가 나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로 못 가고, 이 길이 분명히 지름길인데, 이 길로 가면 빠른데 하나님이 ‘우회’라는 안내 표지판을 세우고 빙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시간 낭비 하는 것 같고 내 뜻대로 못 가서 짜증나지만 실은 그 안에 하나님의 깊은 뜻이 들어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회하는 길은 멀고 귀찮지만 반드시 운전자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돌아가기 귀찮다고, 혹은 내 본디 계획과 다르다고, 비효율적, 비생산적이라고 그 길을 강행하여 가면 위험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답답하고 오래 걸리더라도 그 뜻을 깨닫고 순종하면 꼭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성경에 나오는 우회를 ‘거룩한 우회’라고 이름 붙여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또 신앙생활 하면서 때로는 돌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천천히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빠르다고, 효율적이라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매미는 가을 한 달 동안 맴맴 울기 위해 애벌레로 땅속에서 6년에서 17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예수 믿고 돌아오는 데 수십 년 걸린 분이 있습니다. 왜 이제야 예수 믿게 되었는가, 왜 이제야 하나님께 돌아왔나 후회도 되고 그 긴 세월이 허송세월 같고 아까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좀 멀리 돌아왔을 뿐 이제 주님께 돌아왔으니 제대로 찾아온 것입니다.

어떤 분은 큰일을 이루기 위해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며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갑니다. 흥선 대원군은 안동 김씨 세력이 권력을 쥐고 똑똑한 왕족들을 제거하던 시절에 상가 집에 찾아가 밥을 빌어먹고 미친 척 하면서 숨죽이고 기다리다가 결국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왕위에 올렸습니다. 바로 고종 임금입니다. 때를 기다리며 힘든 길, 먼 길을 빙 돌아간 것이지요.

이렇게 하나님이 다 깊은 뜻이 있어서 우회 표지판을 세우고 우리에게 돌아가라고, 기다리라고 하시는 것이 바로 ‘거룩한 우회’입니다. 오늘부터 이 성경에 나오는 거룩한 우회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우회’ 즉 하나님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 길로 빙 돌아가게 하신 사건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길치 이스라엘

먼저 성경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방황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안 물어봐서 그랬답니다. 저는 정말 ‘길치’입니다. 길눈이 어두워서 길을 정말 못 찾아요. 그래서 운전할 때 이만저만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 길을 잘 못 찾고 잘 잊어버려 돌아갈 때가 많습니다. 대개 부부 중 하나가 길눈이 어두우면 다른 하나는 밝아서 잘 찾아간다는데 저희 아내도 어지간한 길치라서 우리 부부가 함께 길을 찾아가려면 헤맬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길을 잘 물어보는 편입니다. 길을 찾아가다가 잘 모르면 차를 잠시 세우고 지나가는 사람이나 가게에 길을 물어봅니다. 하지만 끝까지 고집 피우고 안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고 하네요. 어떤 부부는 길 찾아가다가 운전하는 남편이 부인 말 안 들어서 부부싸움 하고 이혼까지 했다나요?

오늘 본문에도 ‘길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광야에서 똑바로 가면 며칠이면 갈 길을 못 찾아 헤매서 자그마치 40년이나 걸립니다. 그런데 길을 못 찾아서, 길눈이 어두워서 40년을 헤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부러 헤매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성경을 못 믿겠다고 합니다.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간 거리는 얼마 안 됩니다.

출애굽 해서 가나안까지 직선거리로 대략 320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곧바로 가면 1주일이나 열흘 정도 걸릴 거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약자와 가축도 딸렸으니 아무리 천천히 갔다 쳐도 한 달 이상 걸릴 거리가 아닙니다. 지금 성지순례를 가면 차로는 불과 몇 시간이면 가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이 짧은 거리를 40년이나, 그것도 장정만 60만 명, 남녀노소 다 치면 거의 200만이나 되는 인원이 헤매고 다녔다니까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이런 계산까지 했더군요. 가나안 땅까지의 직선거리는 대략 320킬로미터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루 평균 22미터, 시간 당 1미터도 못 간 셈인데 밤마다 텐트 치고 아침마다 걷어 가나안 땅을 향해 북동쪽으로 하루 22미터씩 거북이, 아니 달팽이 속도로 갔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하다못해 200만 명을 한 줄로 죽 세우기만 해도 수십 킬로미터는 될 텐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사실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200만 이스라엘 백성이 열흘이나 넉넉잡고 한 달이면 갈 길을 일부러 40년 동안이나 헤매게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지만 하나님이 마음먹으시면 얼마든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윤형방황’(輪刑彷徨)이라는 현상이 있습니다.

사람은 눈을 가리면 똑바로 걷지 못하는데 100미터쯤 가면 결국 원을 그리면서 제자리를 맴돌게 됩니다. 이 현상을 바로 ‘윤형방황’이라고 합니다. 여러 해 전 중앙아프리카에서 행방불명 된 등반가가 13일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과일과 풀뿌리로 연명하며 하루 12시간씩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길을 잃어버린 장소와 그를 발견한 장소는 약 6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12일 동안 12시간씩 걸었다고 가정하면 약 250킬로미터를 걸은 셈인데 결국 6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 안에서 뱅뱅 맴돌며 250킬로미터를 헤맨 것입니다. 세상에도 이런 현상이 얼마든지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마음먹고 일부러 그렇게 헤매게 한다면 까짓 40년이 문제겠습니까? 상식적으로, 과학적으로 안 되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마음먹으시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일부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이나 빙빙 돌며 헤매게 하셨는가? 열흘이나 한 달이면 갈 길을 그 많은 백성이 40년 동안이나 빙빙 돌다가 결국 스무 살이 넘어 출애굽한 장정은 여호수아와 갈렙만 빼고 다 죽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거룩한 우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한 우회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요? 함께 살펴봅시다.

❚우회의 이유

무엇보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방황이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말씀합니다. 민수기 14장 3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뽑아 열두 명의 정탐군을 가나안 땅에 파견합니다. 그런데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두 명의 정탐군이 보고를 하는데 그 가운데 열 명은 야단났다고 보고합니다. 정말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맞는데, 포도송이 하나를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들고 와야 할 정도로 비옥하고 좋은 땅인데 문제는 거기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엄청나게 세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사는 성읍은 크고 견고한데다가 사람들 자체가 덩치가 크고 강해서 우리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은 엄청나게 큰 거인들이라서 우리가 그들 앞에 서면 ‘메뚜기’ 같다면서 우리가 쳐들어가면 절대 이길 수 없다고 겁을 줍니다. 열두 정탐군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아니라고, 비록 그들이 강하게 크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요 먹이라고 보고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두 사람의 말을 믿지 않고 나머지 열 사람의 말을 믿습니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맹점이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참 좋지만, 저도 민주주의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뭐냐? 다수결이라고 반드시 옳은 결정을 하라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다수가 어리석은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당시도 10대 2라는 절대 다수의 보고를 믿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리석은 결정을 합니다.

밤새도록 통곡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며 왜 우리를 이곳 광야까지 끌고 나와서 죽게 하냐고, 지금이라도 그냥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배은망덕한 백성들에게 크게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징벌을 내리시는데 정탐군들이 정탐한 40일을 하루 당 1년씩 쳐서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방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40년 동안 올바른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빼고 열 명의 정탐군을 비롯한 모든 성인은 광야에서 다 죽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자, 여기까지가 민수기가 말씀하는 광야 40년 방황의 이유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벌을 받아서 그 가까운 거리를 40년 동안이나 헤맨 것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물론 징벌의 의미도 있습니다.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 했고 열 명의 정탐군이 비신앙적인 잘못된 보고를 했습니다. 벌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징벌 이전에 이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방황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보호와 훈련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보호하시는 하나님

첫째, 광야 40년 방황은 보호의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출애굽기 13장 17절을 봅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무슨 뜻입니까? 분명 빠른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17절에 나오는 ‘블레셋 길’입니다. ‘블레셋 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리 잡고 살던 애굽의 고센 땅에서 가나안을 잇는 가장 짧고 좋은 길로서 약 250킬로미터의 해안 길입니다. 아주 좋은 지름길이요 넓게 뻥 뚫린 완전 하이웨이입니다. 이 길로만 가면 열흘이나 한 달 안에 충분히 가나안으로 가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1970년 중엽에 도단(T. Dothan)이라는 이스라엘 고고학자가 가자 지역을 발굴하면서 놀라운 발견을 합니다. 발굴 과정에서 애굽의 변경 수비대가 이 블레셋 길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음이 밝혀진 것입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애굽은 이 요충지대를 관리하기 위해 변경 수비대를 파견하고 곳곳에 요새를 건축해서 튼튼하게 지켰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가깝고 좋은 길이라도 이 길로 가면 틀림없이 이 애굽 수비대와 전쟁을 치를 것이 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애굽의 최정예병들이 구축한 견고한 호랑이굴 속으로 들어가면 아주 힘들고 어려운 전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늘 광야에서 조금만 불편하거나 힘들면 투덜대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나올 것 같습니까? 틀림없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할 것입니다. 겨우 애굽을 벗어났는데 여기서 또 애굽 군사들을 만난다며 두려워하고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할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큰 징벌을 하나님께 받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일을 미리 예견하시고 가까운 길을 놔두고 험하고 먼 광야길로 돌아가게 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먼 길로 돌아가게 한다고 해서 결코 그들을 방치하거나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21~2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은 이 광야 40년 방황 동안 한 번도 이스라엘을 그냥 내버려두거나 방치하지 않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배고플 때는 만나를 내리시고 목마를 때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십니다. 무서운 적군이 쳐들어오면 하나님은 친히 여호와 닛시, 이스라엘의 깃발이 되고 총사령관이 되셔서 그들을 물리치게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은 40년 방황 동안 단 한 순간도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눈동자와 같이 지키고 인도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일부러 우리를 먼 길로 돌아가게 하거나 기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답답할 수 있습니다. 짜증도 납니다. 왜 가까운 길 놔두고, 왜 편한 길 놔두고 나를 이렇게 멀고 힘든 길로 가게 하냐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엄청난 사랑의 보호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엄마가 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말합니다. “얘야, 너 오늘부터 학교 갈 때 늘 다니던 그 길로 가지 말고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른 길로 가렴.” 왜 그랬을까요? 늘 다니던 길은 가깝지만 요즘 차들이 워낙 쌩쌩 달려서 사고가 많이 납니다. 불량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다 아들을 보호하려는 어머니의 사랑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 초등학교 2학년 녀석이 “엄만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그래요? 이제 나도 다 컸으니 알아서 갈 겁니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엄마의 깊은 사랑을 알지 못하고 자기를 보호하려는 엄마의 계획을 모르고 불평하고 짜증내며 자기 고집대로 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호 계획입니다. 우리가 철이 없을 때 이 계획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론 반항하고 내 고집대로 강행하려고 합니다. 좀 멀리 돌아가는 것이 귀찮고 힘들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반드시 큰 코 다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해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멀리 돌아가는 길을 하나님이 나 혼자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그 먼 길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지키고 인도하십니다. 언제나 나와 동행하고 나를 지켜주십니다. 그러니까 그 길이 좀 멀고 힘들어도 안심하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는 소년을 용사로 키우기 위해 용기를 훈련하는 독특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디안 소년들을 야생동물들이 들끓는 숲속에서 밤을 지내게 하는 시험을 통해 훈련을 함으로써 소년들의 담력을 키웠습니다. 이 시험 날 밤, 짐승들이 우는 캄캄한 숲속에서 소년은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하지만 날이 밝아오면서 소년은 자기의 아버지가 가까운 나무 뒤에서 화살을 당긴 채 자기를 지키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아들 몰래 아버지는 아들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게 하기 위해 밤새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 뜻에 절대 순종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길로, 좀 멀고 힘들더라도 순종하여 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 방황은 훈련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라도 빨리 광야로 통과한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편안하게 살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장기간 광야에 묶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 훈련 프로그램 때문입니다. 그 훈련 프로그램은,

첫째로, 앞서 말씀드린 순종 훈련입니다. 기본적으로 늘 불순종하고 원망하는 것이 몸에 밴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대로 가나안에 빨리 들어가게 하면 그들은 틀림없이 가나안 땅에 살며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징벌을 받아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0년 동안 그들을 헤매게 하시면서 순종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둘째, 말씀 훈련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 머물게 한 이유는 율법을 주시고 율법대로 사는 생활 훈련을 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 그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해 자그마치 1년 동안 거기에 살게 하면서 십계명을 주고 율법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광야생활 내내 만나를 주셨지만 육신의 양식인 만나만 준 것이 아니라 영의 양식인 말씀을 주며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신명기 8장 3절에서 광야 40년을 회고하는 마지막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셋째,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광야생활 40년 내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만 바라보고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니 백성들은 40년 내내 이 구름기둥, 불기둥이 가면 따라 가고, 멈추어서면 함께 멈추어 서는 삶을 살았습니다. 천막을 치고 살았던 그들은 언제든지 떠나갈 준비를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위만 바라보고 산 것입니다. 하늘만 바라보는 삶이었습니다. 또한 만나와 메추라기를 바라보며 매일매일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야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늘만 바라보고 살도록 훈련하신 것입니다.

넷째, 길을 묻는 훈련입니다. 설교 첫머리에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방황한 이유가 길을 안 물어봐서였다고 했지요? 진짜입니다. 길도 잘 모르면서 고집 세고 자존심 세서 안 물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스탠리 존스가 정글 한복판을 탐험하는데 가이드가 키가 큰 잡초와 무성한 덤불을 칼로 자르며 길을 안내했습니다. 아무리 가도 끝도 없어 보이는 정글입니다.

그는 더위와 피로에 지쳐 말합니다. “여기가 어디요? 도대체 어딜 가는지 알고나 가는 거요? 길은 어디 있소?” 노련한 가이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바로 길입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등반가들은 반드시 셰르파라는 네팔인 안내인을 데리고 갑니다. 그곳의 길과 지형에 익숙한 사람을 데리고 가야 험한 산을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길을 물어야 합니다. 가장 길을 정확하게 아는 분에게 말입니다. 누구입니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고 말씀하신 예수님입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하나님의 자녀로 준비하는 훈련입니다.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게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왕자들은 아주 혹독하고 철저한 훈련과 교육을 받습니다. 왕자에 걸맞게, 장차 왕이 되기 위해 대충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의 왕인 독수리는 일부러 새끼를 천 길 낭떠러지에서 밀어버립니다. 맹수의 왕인 사자도 새끼들을 절벽에서 밀어버립니다. 왕이 되려면 훈련 제대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왕의 자녀가 되어 왕으로 살려면,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기나긴 훈련, 철저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은 그 자녀요 백성인 이스라엘을 순종 훈련, 말씀 훈련,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 길을 묻는 훈련, 하나님의 자녀로 훈련시키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우회해 40년 동안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절대 빠른 길, 편한 길만 찾아서는 안 됩니다. 지름길만 찾아 가려 하면 결코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로 훈련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혹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우회하시오”라는 표지판을 세워놓고 돌아가게 하시더라도, 때로는 힘든 길, 외로운 길, 실패의 길을 가게 하시더라도, 또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시더라도 그것은 절대 징계도, 여러분을 미워해서도 아님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바로 여러분을 더욱 능력 있고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한 과정임을 기억하시고 우회하여 묵묵히 순종하여 믿음으로 그 길을 가시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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