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46 사도 행전 9 장 The 42 Correct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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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사도행전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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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단원, 셋째 날: 사도행전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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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사도행전 91~9

사도행전 910~22

사도행전 923~31

사도행전 932~43

18단원, 셋째 날: 사도행전 9장
18단원, 셋째 날: 사도행전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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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30(수) “사도행전 9:1-19a” / 작성: 이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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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30(수) “사도행전 9:1-19a” / 작성: 이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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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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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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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단원, 셋째 날: 사도행전 9장

예수께서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나중에는 바울로 불림)에게 나타나셨으며, 사울은 그 일로 눈이 멀게 된다. 아나니아를 통해 치유된 사울은 침례를 받고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사울은 후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곳 제자들과 함께하였으나 예루살렘의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어, 결국 사도들은 그를 다소로 보낸다. 베드로는 룻다와 욥바에서 기적을 행한다.

사도행전 9:1~9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시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는 용서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이미지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어떤 이유로 삶에서 일어나는 실수들, 즉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저지른 실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잊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다운 면모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라는 위대함과 존엄에 명확하게 위배됩니다. … 사람들이 회개하게 합시다. 성장하게 합시다. 사람이 변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것이 신앙입니까? 맞습니다! 그것이 희망입니까? 맞습니다! 그것이 자애입니까? 맞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자애, 즉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사랑입니다.”(앞으로 성취할 최고의 것”, 리아호나, 2010년 1월호, 19~20쪽)

경전 학습 일지에 다음 질문의 답을 적는다. 누군가가 변하고 성장하도록 여러분이 지켜봐 주고 할 수 있다고 믿어 주는 것이 중요할 만한 상황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자신이 변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왜 중요할까?

사도행전 9장을 공부하면서, 한 사람의 변화와 성장 경험을 통해 어떤 진리들을 배울 수 있는지 찾아본다.

사도행전 9장의 대부분은 사울이라는 사람이 겪은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울은 길리기아 다소 시에서 태어났다.(사도행전 21:39 참조) 그는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였으며(사도행전 16:37 참조), ‘히브리 말’(아람어로 추정)과 헬라 말[그리스어]을 구사했다.(사도행전 21:37~40 참조) 그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유대인으로(로마서 11:1 참조), 독실한 바리새인이었으며(사도행전 23:6 참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뒤쫓고 핍박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사도행전 9:1~2 참조) 그는 후에 자신의 라틴어 이름인 바울로 알려졌다.[사도행전 13:9 참조]”(New Testament Student Manual [Church Educational System manual, 2014], 294)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사도행전 22:3 참조) 가말리엘은 저명한 바리새인이었고 유대교의 율법 교사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사도행전 5:34~40 참조)

사울은 제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장면이 설명된 사도행전 7장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여러분은 아마 스데반을 돌로 친 사람들이 자신의 겉옷을 사울의 발아래 두었다는 내용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사도행전 7:58~59 참조)

사도행전 8장 1~3절과 9장 1~2절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사울이 어떻게 대했는지 찾아본다.

사도행전 9장 3~6절을 읽으면서, 사울이 다메섹에 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체포하러 가는 중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찾아본다.

이미지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 사도행전 9장 5절에는 “가시채를 뒷발질하기[to kick against the pricks]”라는 표현이 나온다.(사도행전 26:14 참조—옮긴이) “‘가시채’는 가축을 앞으로 몰기 위해 가축을 찌를 때 사용하는 날카로운 창이나 막대기를 말한다. 고집이 센 가축들은 앞으로 가기는커녕 오히려 그에 대한 보복으로 뒷발로 차기도 하는데, 말 그대로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이다. 그러한 반항은 주인이 더 고통스러운 자극을 가하도록 자초하는 일이며, 가축에게 괴로움만 더할 뿐이다. 사울이 계속해서 구주에 맞서 싸운다면 스스로에게 고통만 초래할 뿐임을 구주께서는 명확하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리스어 문헌에서 ‘가시채를 뒷발질하다’라는 말은 신에게 대항하는 것을 뜻하는, 널리 알려진 비유였다.”(New Testament Student Manual, 295)

후기 성도판 영문 성경에는 사도행전 9장 6절에 “주여,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하시나이까?[Lord, what wilt thou have me to do?]”라는 사울의 질문이 나온다. 사울이 이 질문을 한 것으로 보아, 우리는 그의 어떤 면을 알 수 있는가?

사도행전 9장 7~9절에 대한 조셉 스미스 역에 따르면, 사울과 함께 가던 사람들은 빛은 보았으나 사울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은 듣지 못했다.(조셉 스미스 역, 사도행전 9:7 참조[경전 안내서에 있음]; 또한 사도행전 22:9 참조)

사울은 시현을 본 후에 눈이 멀게 되었다. 그는 다메섹으로 이끌려 갔으며,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자신이 사울이라고 상상해 본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극심하게 박해하던 사람이었다면, 이때 어떤 생각과 느낌이 들었을 것 같은가?

2020/09/30(수) “사도행전 9:1-19a” / 작성: 이대은

[본문] 사도행전 9:1 – 19a

[찬양] 334장 ‘위대하신 주를’

8장 초반에서 사울을 전면에 등장시킨 누가는 빌립의 전도 여행을 다루며 잠시 그를 무대 뒤편에 감췄다가 다시 9장에서 사울의 회심을 극적으로 그려냅니다. 스데반과 빌립을 통해 세계선교의 장이 열렸음을 보여주고, 이제 그 주역이 될 두 인물의 회심을 제시하는데 9장에서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사울이 회심하고, 10장에서는 고넬료가 이방인으로는 최초로 회심합니다. 제자들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함께 읽은 소위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은 성경에 등장하는, 그리고 기독교 역사상 그 어떤 회심보다도 극적이고 유명한 사건입니다.

누가는 사울의 회심을 사도행전 9장과 22장 26장에 걸쳐 세 차례나 기록합니다. 9장에서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22장과 26장에서는 바울이 직접 전한 설교의 내용을 따오는 식으로 서술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같은 사건을 세 번이나 기술했다는 사실을 볼 때 누가가 사울의 회심이 사도행전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독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건으로 여겼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실 은혜를 사모하며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살기 등등한 사울(1-2절)]

1절 말씀을 보면 사울은 스데반을 죽인 이후에도 여전히 주의 제자들에 대해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을 찾아가 외지에 퍼진 그들을 잡아 올 수 있도록 권한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다메섹은 현재 시리아의 수도로서 예루살렘에서 약 240km 떨어진 곳입니다. 다메섹은 창세기부터 등장하는 고대 도시로서 유대와 오랜 인연이 있었기에 당시에도 많은 유대인이 여러 회당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곳까지 흘러간 자들까지 끌고 오겠다는 일념으로 일주일 정도가 소요되는 먼 길을 떠납니다. 1절에서는 그들을 주의 제자들이라고 표현하고 2절에서는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등장하기에 앞서 나타나는 독특한 호칭입니다. 특히 ‘도’란 사도행전 6장 7절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는 말씀에서 도에 해당하는 피스티스, 즉 믿음이 아니라 요한복음 14:6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실 때 길에 해당하는 호도스입니다. 즉 누가는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을 따르는 자들을 잡아서 폭력으로 제압하려고 찾아갔지만, 오히려 다메섹으로 향하는 길에서 사울이 은혜로 제압되어 참된 길을 찾았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울과 예수님(3-9절)]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다메섹에 거의 와가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내려 그를 둘러쌉니다. 사도행전 26장에서는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왔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22장에서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울은 땅에 엎드러지고 맙니다. 그 순간 음성이 들려옵니다.

[(4-5)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아 사울아 라고 부르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름을 두 번 부르는 양상이 마치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부르신 하나님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의 현현입니다. 사울도 이를 분명히 의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이 압도적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뜻밖의 말을 듣게 됩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상한 말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박해했다니. 그래서 묻습니다.

주님, 도대체 누구이십니까? 모세의 물음과 동일합니다. 그러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십니다. 성경에는 사울이 예수님을 박해한 기록은 물론 마주쳤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교회와 그 구성원을 박해한 사울에게 나를 박해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은 이상한 방식으로 자신을 제자들과 동일시하시는 주님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따라서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가르침은 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음성은 시내로 들어가 기다리라고 명하였고 사울은 그대로 따릅니다.

[(8-9)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사울은 엎드러졌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눈은 떴지만 보이지 않아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갑니다. 자신의 힘과 지식을 믿고 기세등등하게 찾았지만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그곳에 들어섭니다. 거기에서 3일 동안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였습니다. 보지 못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기 의지에 따라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울이 엄청난 내적 갈등을 겪으며 주님께 부르짖고 있었음을 입증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다른 인물을 준비시키십니다. 바로 아나니아입니다.

[사울과 아나니아(10-19a절)]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사도행전 22장에서 아나니아는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에게 칭찬을 듣는 자로 소개됩니다. 아나니아는 아마도 사울이 가장 먼저 잡아갈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환상 중에 하나님은 아나니아를 부르시고 명하십니다.

[(11-12)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주님은 직가, 즉 곧은 길이라고 부르는 다메섹 시내 중심 거리에 위치한 유다의 집에 가서 사울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기도로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에게는 아나니아가 안수하여 다시 보게 되는 환상을 보여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사울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자초지종을 모르는 아나니아는 반문합니다.

[(13-14)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아나니아는 완곡하게 반대 의견을 냅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사울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나니아는 신중한 인물로서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들어보니 사울이 주의 성도들에게 큰 해를 끼쳤으며, 여기에서도 대제사장들에게 사람을 잡아갈 권한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라고 자신이 아는 바를 겸손하게 아룁니다. 이해할 수없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경건한 자가 취해야 할 마땅한 자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15-16)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주님은 그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사울은 예수님의 이름, 즉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복음이 어떠한지를 선포하고 고백하는 사역을 위해 특별히 택한 자임을 밝히십니다. 그는 여러 지역의 이방인들 및 아그립바 2세와 로마 황제 앞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사울이 단지 이방인을 위한 사역만을 행하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릇이란 사울이 특별한 기능을 행하는 사람임을 의미하는데, 사실 그릇은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그 기능이 달라집니다. 그릇에게는 자기 주권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사울 역시 자신이 질그릇과 같은 존재에 불과함을 잘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지만 그의 삶은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는 말씀을 입증하는 삶이었습니다. 골로새서 1:24에서 사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의 삶은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사명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고난을 채우는 그릇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아나니아가 사울을 찾아가 만납니다.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아나니아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사지가 될지도 모르는 그곳을 찾아가 사울에게 안수합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사울아. 이 말이 얼마나 사울의 귀에 아름답게 들렸을지 모릅니다.

[(행 22:13-16)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왜 주저하느냐는 말을 들을 때 사울은 결심하고 응답합니다. 증인이 되어,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죄를 씻어 성령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18-19a)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그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는 여기에서 의학적인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사울의 증상이 신체적인 이상을 수반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그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새로운 시력을 받았습니다. 사울이 보는 것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흘이나 금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먹고 마시지 않고, 우선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는 음식을 준비하여 먹였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하며 사울은 강건해집니다.

오늘 말씀을 보며 이 사건이 사울에게만 특수한 경험이며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 사울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그의 마음을 돌이키셨다고 보게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회심 사건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일어난 독특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넓게 보면 회심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26장 14절에서 사울은 회심 사건 중에 이런 음성이 들렸다고 고백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사울이 마음속에 이러한 가시채를 의식했음을 알 수 있는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그가 보이는 극렬한 태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광신적 태도는 오히려 그 안에 의심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 외적 행위에 더욱 몰두합니다. 그에게 이런 내적 의구심을 불어 넣은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선 스승 가말리엘의 태도였습니다. 사도행전 5장 39절에서 가말리엘은 말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스승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그에게 불안감을 주면서 스승과 멀어지게 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요소는 스데반이었습니다. 그는 스데반이 죽는 것을 당연히 여겼지만, 스데반이 죽으면서 보여준 담대한 태도와 말씀에 근거한 설교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후에 고백하는 말씀에서 보듯이 자신의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죄에 대한 의식이 불안감을 증폭하였습니다. 그가 아무리 외적으로 신앙생활에 몰두해도 그의 내면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상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을 겪던 그에게 하나님이 드디어 나타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법은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저 물으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에게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만 자신이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만 밝히셨습니다. 믿지 않으면 죽일 것이라는 위협이 아니라 다만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셨을 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울은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로 기도하며 고뇌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찌르시다가, 빛과 소리로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찾아온 아나니아가 자신을 부드럽게 만지며 형제라고 부르게 하셨을 때, 그의 마음은 무너져 내립니다. 주님이 얼마나 온화하고 사랑 많으신 분인지, 교회 공동체가 얼마나 따뜻한지 절감한 그는 전심으로 주님께 돌아선 것입니다.

이러한 회심은 오늘날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을 모르는 이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가시채를 뒷발질합니다. 괴로움을 알면서도, 마음의 고뇌를 감추며 하나님을 부정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어떠한 계기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통해 빛과 소리가 그에게 임할 때 회심합니다. 혹시 주위에 이러한 회심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분이 계십니까? 아나니아처럼 그를 돌봐야 할 것입니다. 영혼의 갈급함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인 필요를 헤아리고 살피며 돌아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위험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그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 사람을 위해 나를 사명의 그릇으로 삼으셨을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사울처럼 회심의 경험이 있다면 아나니아처럼 섬기기 원합니다. 주님의 헤세드를 받았다면 그 헤세드를 전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명절 기간 접하게 될 우리 주위의 사울이 있다면 내가 예전에 사울이었음을 기억하고 아나니아로 섬기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내가 사울과 마찬가지로 주님을 박해하다가 예수님을 만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나 역시 주님의 그릇으로 고난을 채우며,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대로 사용되게 하시옵소서. 또 명절 기간에 만나게 될 우리 주위의 사울들이 있는데, 아나니아처럼 저들을 돌보고 세우는 일에 힘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내가 주님을 만나고 회심했던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사울의 회심기와 나의 회심기는 어느 면에서 닮아있습니까?

2.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폭력적으로 강압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이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존중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격했던 결정적인 사건은 무엇입니까?

3.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갔던 아나니아처럼 나를 찾아왔던 믿음의 은사(恩師)를 생각해보고 명절을 맞아 연락을 드려 감사를 표하십시오.

4. 명절에 만나게 될 주위의 사울과 같은 이들에게 어떻게 아나니아처럼 그리스도의 사랑과 돌봄을 베풀겠습니까?

Center for Excellence in Preaching

제가 지난 번 사도행전 5장에 대한 글에서 말씀 드렸듯이, 렉셔너리(Lectionary)는 통상 구약 본문을 첫번째 본문으로 삼지만, 부활절 기간에는 부활이 초대 교회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기 위하여 사도행전을 첫 번째 본문으로 삼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성장을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이사야 65장)을 어떻게 창조하시는지 보여주는 것은 탁월한 방식입니다.

그러한 교회의 성장은 항상 편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에 대한 첫 번째 박해가 진행 된 후에 발생한 새로운 개종자들의 폭증은 추한 인종적 편향을 가진 목회적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일곱 집사를 임명함으로써 “과부 구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일곱 집사의 임명은 구제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일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고, 사도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을 위해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후에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복음 전파를 멈추라는 명령들이 돌이 되어, 일곱 집사 중 한 명인, 성령으로 충만했던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교회를 향한 광범위한 박해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그 박해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예루살렘을 떠나 원거리에 있는 그들의 고향으로 내좇았습니다. 흩어진 사람들 중에 일곱 집사 중 또 한 사람인 빌립이 있었습니다. 아직 유대 지역에 머물고 있을 때 그는 첫 번째 아프리카 회심자를 만드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이웃한 사마리아에까지 복음을 전했고, 이와같이 지상에서 믿음의 영역을 넓히라는 예수님의 대위임령은 성취되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놀라운 소식들이었지만, 오늘 본문은 믿음이 땅 끝까지 전하여지고 있는 만큼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박해 역시 널리 퍼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스데반이 죽어 가던 현장에 있던 조연들 중 한 사람이 가장 악독한 악당 역을 맡게 됩니다. 귀한 가문 출신인 헬라파 유대인이며,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으며, 믿음에 있어서 열심이었던 다소의 사울은, 교회를 예루살렘 밖으로 내쫓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채, 이 새로운 “도”를 지구상에서 말살하려고 결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도를 땅끝까지 전하시기 위해서 바로 이런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전형적이며 아이러니 합니다.

산헤드린으로부터 공문을 받은 사울은, 사도들과 연관된 사람들이라면 어떤 사람이라도 찾아 체포하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끌어 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북동쪽 150 마일에 있는 다메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다음 일어난 사건은 모든 문학 작품들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반전 이야기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사실, “다메섹 도상 경험”이라는 문구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전해지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극적인 삶의 변화를 표현하는 문화적 슬로건이 되어 왔습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울이 있던 곳이 바로 다메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에서 세 번 등장합니다. 세부 사항들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오늘 본문의 나레이터인 누가에 의해서 한 번, 그리고 사울/바울 자신에 의해서 22장과 26장에 두 번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 내용은 세 본문에서 동일합니다. 하늘로부터 비춰진 아주 밝은 빛 때문에 사울은 땅에 쓰러졌습니다. 하늘로부터 들려 온 한 목소리가, 사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질문을 던지며 사울을 강타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바울은 두려운 나머지 말을 더듬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누구시니이까?” 그 주님은 사울이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놀라운 대답을 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 한 마디만으로도 불신자였던 사울을 변화시기키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박해자에서 복음 전도자로 변화시키기 위해 이런 말씀을 더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설교에서 이 사건의 다양한 면모들을 다룰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현현의 모습인 밝은 빛과, 천둥 소리같은 목소리를 다룰 수도 있고, 예수님께서 박해 받는 교회와 동일시 한 부분이며, 사울이 알지도 못하는 목소리에 “주여”라고 반응한 부분, 혹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을 때 사울의 마음의 상태 등을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요소들은 설교에 다채로움을 더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오늘 Lectionary 본문이 끝나는 부분에서 설교를 멈추면 안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놓치는 실수를 범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 이야기의 주제는 단지 우선적으로 사울의 회심이 아닙니다. 그 주제는 궁극적으로 바울이 복음을 전하라는 위임을 받았다는 데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회심하지 않았더라면 위임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회심은 단순히 천국에 들어가는 티켓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그에게 주어진 사명의 시작이었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의 힌트는 6절에 등장하는 “행할 것”이라는 말에 있습니다.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일어난 변화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급진적인 정통 교리의 챔피언이 이제는 남의 손에 이끌리어 앞으로 삼 일 동안 밤이고 낮이고 금식하며 기도할 어떤 집으로 가야 하는 눈 멀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 아이가 된 것입니다.

사울은 예수님과의 충격적인 만남 후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아나니아를 보내셔서 그의 사명을 설명해 주셨고, 아나니아를 통해 신앙의 내용을 소개 받았고 믿음의 공동체도 소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만, 아나니아는 사울을 만나기를 꺼려했습니다. 이 사람 사울에게는, 이렇게 홀로 있는 그리스도인인 아나니아에게 무슨 행동을 할 지 이미 알려진 그럴만한 평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재촉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사울을 향한 마음에 품은 특별한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예수님의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가서, 사울의 삶의 행로를 뒤바꿔 놓은 하나님의 일을 마무리 합니다. 아나니아가 어떻게 즉각적으로 사울을 새로운 교회 생활 안으로 이끌었는지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안수 한 후 그를 “형제 사울”이라 부릅니다. 그는 복음의 핵심을 명확하게 말해줍니다. 그 복음의 핵심은 사울이 길에서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의 멀었던 눈을 고쳐 주고, 사울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도록 인간적 통로가 되어 줍니다. 그 후에 사울은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습니다(아마도 성찬 아닐까요?).

이와 같이 기운을 차린 사울은 나머지 다메섹 교회 교우들에게 소개 됩니다. 그 후 즉시 그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약속된 그리스도라고 회당에서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가 바로 사울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사명이 성취 되기 시작할 때입니다.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리라.” 유대인들은 사울이 완전히 변화한 것에 놀란 나머지 그를 죽일 계획을 짜기에 이릅니다. 반전이 완결 된 것입니다. 스데반이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며 죽어 갈 때 옆에 서 있던 그가 이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 때문에 살해 위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잠재적 살인자가 이제 잠재적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그 이름 전함을 막아 섰던 그가 이제 그 이름을 땅 끝까지 지고 갈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람을 그토록 철저히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설교할 때의 강조점입니다.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신약 성경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나타나신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오늘 본문이 말하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바울이 고전15:8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따른다면 말입니다). 초대 교회의 성공과 존재 이유는 (현대 교회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수님의 부활에 있습니다. 인간적인 논쟁을 통해서는 사울은 절대로 변화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상을 위해 죽을만큼 그렇게 용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를 움직여 나갔던 것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실체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와 나” 그 이상이지만, 그렇다고 그 이하도 아닙니다. “나는 예수다.” 교회가 살고 성장하는 것은 이 두 마디 말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사울의 초기 복음 선포에 대한 누가의 요약은 그 후 계속 이어지는 복음 전파의 기준이 됩니다. 사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했습니다. 이 선포가 바로 예수님께서 마16:18에서 그 분의 교회를 그 위에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반석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분이야말로 메시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했습니다. 기독교적이기 위해서는 설교는 늘 그렇듯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각각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는 그리스도에 대해 각 본문에 녹아 있는 독특한 면을 전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사도행전 9장을 설교한다면 세 가지 요소들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첫째, 아무도 예수님의 구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울과 같은 사람이 바울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면, 누구에게나 희망이 있습니다. 바울이 나중에 기록한 에베소서 2장에 보면, 죄로 죽어 있고, 죄의 능력에 사로잡혀 있으며, 세상과 육신과 마귀라는 불경한 삼위일체의 노예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인 사람들조차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늘 회심 뒤에는 위임이 있습니다. 사울을 단순히 한 명의 그리스도인 만드시려고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울로 하여금 특별한 일에 사용되도록 사울을 그리스도인으로 변화 시키셨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오래 된 요리문답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구원 받았고, 섬기기 위해 구원 받았다.” 바울의 동료 선교사인 베드로는 그의 첫 번째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전에 우리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께 속한 택한 백성들이 되었는데, 이는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우리가]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10).”

셋째, 사울 곁에 아나니아를 비롯한 믿음의 공동체가 없었더라면, 사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찰스 캠벨(Charles Campbel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명은 단순히 ‘나와 예수님’ 사이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믿음의 공동체에 의해 판단되고 확인되고 방향이 정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금식을 하거나 기도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사색을 하기 위한 자기만의 골방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의 지지나 격려 없이는 세상에 나가서 제자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사울로 하여금 그의 나머지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직접적으로 사울에게 말씀하실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평범한 한 신자인 아나니아를 택하셔서 그를 통해 말씀하시고 일을 하셨습니다. 교회는 문자적으로 지상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교회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이 극적인 이야기를 찰스 캠벨(Charles Campbell)이 요약한 방식을 좋아합니다.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느슨’하십니다. 그 분은 세상에서 행할 우리의 사역을 위해 때때로 놀라운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시기도 하시고,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시기도 하십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 앞에서는 박해자들도 박해 받는 사람의 고난을 공유하는 동맹이 됩니다. ‘평범한’ 신자들이 분별의 은사를 제공합니다. 원수들은 형제와 자매가 됩니다. 폭력은 증언으로 대체 됩니다. 위임식과 세례와 성만찬은 성령의 변화시키시고 능력 주시는 사역을 위한 매개체가 됩니다. 말씀은 살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달 됩니다.”

예화 아이디어

유턴을 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Fast and Furious” 영화에 등장하는 도로를 질주하는 폭주족들처럼 복잡한 도로 한 복판에서 타이어에 연기를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도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니면 컨트리송 가수가 “나에게 40 에이커의 땅을 주시면 이 트럭을 돌리겠습니다”라는 아주 오래된 노래에서 말하는 방식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사울의 경우에는 그를 박해자에서 복음 전도자로 180도 극적으로 변화시킨 빠르고 급격한 변화였습니다. 디모데의 경우는 점진적으로 변화한 경우입니다. 어려서부터 그는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딤후 3:15)” 했습니다. 둘 다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서부의 산불과 남부의 홍수들로 인해 수 많은 구조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은, 종종 그런 구조 작업들이 생존자 하나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사도행전 오늘 본문에서는 둘 다 입니다. 예수님은 구조 작업을 나가셨습니다. 사울은 죄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에게도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울에게 새 생명을 주셨고, 그로 하여금 한 평생 구조 작업을 하도록 그를 보내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자: Stan M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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