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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스토리] 여호와 삼마 – 김석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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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48:30-35 / 여호와 삼마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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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에스겔 48:35) 수요성서학당 #.12 (09-02-2020) – 불낙지교회 / 불신자(不信者), 낙심한 자(落心者), 지체하는 자(遲滯者)를 주님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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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The name of the city from that time on will be: The LORD is There.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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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에스겔 4835) 수요성서학당 #12 (09-02-2020)

여호와 삼마(에스겔 48:35) 수요성서학당 #.12 (09-02-2020)  - 불낙지교회 / 불신자(不信者), 낙심한 자(落心者), 지체하는 자(遲滯者)를 주님 앞으로
여호와 삼마(에스겔 48:35) 수요성서학당 #.12 (09-02-2020) – 불낙지교회 / 불신자(不信者), 낙심한 자(落心者), 지체하는 자(遲滯者)를 주님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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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들] 여호와 삼마(Jehovah S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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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들] 여호와 삼마(Jehovah Sa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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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의 하나님” (에스겔 48:30-35) > 칼럼 | KCM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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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의 하나님 (에스겔 48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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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의 하나님(겔 48:30-35)-20100516 – 주일낮 설교 – 설교와 예화나라(한마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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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의 하나님(겔 48:30-35)-20100516 - 주일낮 설교 - 설교와 예화나라(한마음교회)
여호와 삼마의 하나님(겔 48:30-35)-20100516 – 주일낮 설교 – 설교와 예화나라(한마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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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 여호와 삼마 –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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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48:30-35 / 여호와 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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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이 여러 마리의 쥐를 상자에 넣은 다음 빛이 전혀 들어가지 않도록 밀폐 시키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안의 쥐들은 모두 3분 안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밀봉한 상자 뚜껑에 바늘만한 구멍을 뚫어 빛이 조금 들어가게 해주자, 이 경우의 쥐들은 3일이나 살아 있었습니다. 똑같은 여건이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바늘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입니다. 그 빛이 쥐들에게 살아야 할 소망을 제공한 것입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 영국의 한 문인이 나무판을 끌어안고 파도와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추위와 탈진으로 이제는 손가락에 힘마저 사라져 판을 놓고 생명을 포기하려는 안타까운 순간이 왔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 1인승 비행기 한대가 빙글빙글 돌며 이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사라져 갔습니다. 순간 그의 손가락에 다시 힘이 들어갔고 놓아 버리려던 나무판을 힘껏 끌어 않은 채 반나절을 더 버티었습니다.

마침내 구조선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분명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살기를 포기하려는 절망적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무판을 붙들고 반나절 이상 더 버틸 수 있는 힘이 갑자기 어디에서 생겼습니까? 누군가가 자신을 보았기에 살 수 있다는 소망이 힘이었습니다.

독일의 작가 에른스트 블로흐는 “인간은 끊임없이 희망을 품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극한 상황에서도 인내와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힘은 희망입니다. 인간에게 희망이 있는 한, 어떠한 시련이라도 기꺼이 견뎌낼 수 있습니다.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허파에 산소가 필요하듯 삶에는 소망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좌절 합니까? 왜 자살 합니까? 생활고에 시달려서가 아닙니다.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고달파도 희망이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구비되었다 할지라도 희망이 없다면 끝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것에서부터 소망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것이 힘의 원천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가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을 때에, 사랑하고 믿었던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갔을 때에, 온 우주에 혼자 서 있는 커다란 고독에 신음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나를 보고 있다. 나의 모든 형편을 보고 계신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용기를 줍니다.

오늘 분문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 35절을 보면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에스겔의 마지막 절이면서, 에스겔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절입니다. 에스겔은 앞부분에서 성전의 척수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성전에서 수종을 드는 자들의 임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룹니다. 그리고 성회와 절기에 드릴 예물과 제사법에 대한 규례를 다루고, 새로운 땅에 대한 분배를 다루고 이어서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 ’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삼마’ 는 에스겔의 환상 중에 하늘의 예루살렘에 붙여진 명칭으로 ‘바로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것을 보았으나, 이제 새로운 언약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토록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실 것임을 보았고, 그것을 보고 ‘여호와 삼마’ 라고 외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이름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다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정확하고 풍성하게 알려주시기 위한 배려입니다.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기 게시면 다른 곳에는 계시지 않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갖도록 합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곳에는 계시지 않으시고 그 곳에만 계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지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어떤 장소나 어떤 사람에게 특별히 역사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에 보면 시편기자가 하나님을 피해 보려고 했으나 실패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셨고,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그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갈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편재성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는 특별한 경우, 특정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마’ 는 곧 ‘임마누엘’과 같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여호와 삼마’ 의 약속은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성취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거만, 우리는 하나님을 늘 잊고 살아갑니다. 평안할 때는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일이 잘 풀릴 때에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내 힘으로 한 것 같고,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지 않아도 넉넉히 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것 같이 생각합니다. 평상시에는 내 힘대로 살아가다가, 힘들고 어려울 때, 지치고 고단할 때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찾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우리를 버린 적이 없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쁘고 즐거울 때에나, 힘들고 어려울 때에나,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십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약속하신 것을 어기신 법이 없습니다.

민수기 23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8장 20절을 보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지난 일주일 동안 어떤 길을 걸어오셨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계셨던 바로 거기에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 함께 하여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매순간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여호와 삼마’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1. ‘여호와 삼마’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에스겔 선지자는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주전 597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여호야긴 왕과 왕족 및 귀족들, 그리고 유다의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사로잡아 갈 때 그 포로들 가운데 섞여 있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에서 그발 강가 근처에 살았습니다. 그는 포로 후 5년 되던 해에, 선지자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30여세로 포로 중 선지자였습니다.

에스겔은 예레미야나 다니엘처럼, 팔레스타인 역사의 격동기에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주변 정세는 대단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복잡하고 긴 역사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주전 722년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는 신흥 바벨론 제국의 세력에 압도되어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유다 왕 요시아는 반 앗수르 정책을 쓰게 되었고, 한참 세월이 흐른 후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반하였습니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친 바벨론 정책을 하라고 했지만, 여호야김이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공격했습니다. 이때 여호야김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으나, 겨우 100일 만에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느브갓네살이 다시 공격해 왔을 때, 여호야긴 왕과 왕족들과 귀족, 유명 인사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갔는데, 이때 에스겔도 사로잡혀 갔고, 그 후 예루살렘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에스겔은 크게 세 가지를 외쳤습니다. 첫째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은 범죄 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외쳤습니다. 둘째는 이스라엘을 괴롭힌 주변 국가들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외쳤습니다. 셋째는 징계 중에 있는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들을 회복시키고, 그들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에스겔 48장의 말씀입니다.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겔이 외쳤던 세 가지 메시지 가운데 가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에스겔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가장 하고 싶었던 말씀입니다. ‘여호와 삼마’ ,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는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고 싶으셨습니다.

여호와 삼마라는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 있을 때에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을 때에나, 변함없이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 아메리카 인디언의 성인식은 특별하게 치른다고 합니다. 인디언 소년이 13살이 되면 아버지는 그에게 사냥하는 법, 정찰하는 법, 칼 쓰는 법, 낚시하는 법등을 가르친 후 만으로 13살이 되는 날 밤에 그를 깊은 숲속으로 데리고 가서 숲에 홀로 버려둡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늘 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했던 이 소년은 이날 밤만은 눈을 가린 채로 숲속 깊고 먼 곳으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숲속 깊이 가서는 눈가리개를 풀어준 후 울창하게 우거진 깊고 어두운 숲속 한 가운데 혼자 있게 됩니다.

이때부터 소년은 그 기나긴 공포의 밤을 그 숲속에서 홀로 지새워야 합니다. 가지가 스산하게 찰싹거릴 때마다 갑자기 달려들 사나운 동물들이 떠오릅니다. 동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면 금방이라도 늑대가 어둠속에서 뛰쳐나올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바람이 세게 불기라도 하면 더욱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합니다. 너무나 무서워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 깊은 밤 깊은 숲속에 홀로 둔 아버지에 대하여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태어나서 가장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지난 후, 도무지 찾아올 것 같지 않던 새벽 여명이 밝아오면서 이제 주위에 있는 나무나 풀, 길이 보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됩니다. 그 때 소년의 눈에는 밤새 자기와 몇 미터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한 건장한 사내가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다름 아닌 소년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그 깊고 어두운 숲속에서 사랑하는 아들을 홀로 버려둔 것이 아니라 밤새 그의 곁에서 그를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년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홀로 내버려 두었다고 생각했으나 그의 아버지는 밤새 그의 곁을 지키며 거기에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2) 미국에 어느 중년부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금실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큰 부러움을 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시력이 책을 보기 힘들 정도로 나빠져서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수술이 잘못되어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좌절했지만, 결코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그 후 남편은 매일 같이 아내를 직장까지 출근시켜 주고 퇴근시간에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아내에게 서로 직정이 너무 떨어져 있다며 내일부터는 혼자 출근하라는 겁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너무나 섭섭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서 그런 말을 들어 배신감까지 느꼈습니다.

아내는 남편 없이도 혼자서 직장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심을 한 다음날부터 아내는 혼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버스를 타고 내리면서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설움이 북받쳐서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가 버스를 타고 직장으로 가던 중에 운전기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매일 남편이 버스에 항상 함께 타시고 함께 옆에 앉아 주시고 부인이 직장 건물에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다가 손을 흔들어 주시니 얼만 좋겠습니까?” 운전기사로부터 이 말을 들은 아내의 눈에서는 행복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우리 인생길에도 때로는 주위에 모두가 떠나버려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은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인생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도 나를 버리셨구나’하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항상 우리 곁에 계셔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3) 유대인들이 참혹하게 학살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 중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만 경배하며 따랐던 많은 유대인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끔찍한 상황 속에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동료들이 가스실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한 사람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수용소 벽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God is no where!” 많은 사람들이 그 글귀를 보며 더더욱 절망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때 한 유대인이 그 내용을 “God is now here!”로 바꾸었습니다. 어디에도 없는 하나님이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 때부터 죽음에 직면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희망을 찾으며 삶을 이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각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가정에 함께 하십니다. 교회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나라와 함께 하십니다.

2. ‘여호와 삼마’ 하나님과 함께 하면 어떻게 될까요?

여호와 삼마’라는 명칭은 구약에서 항상 구원사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존(스스로 계심), 영원한 존재를 드러내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던 것입니다.

(1) 노아 홍수의 심판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호와 삼마 ’의 하나님으로, 노아와 그 식구들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방주를 짓고 방주 안에서 홍수 심판의 기간을 보낼 때도 ‘그 곳에’ 하나님은 늘 함께 해 주셨던 것입니다.

(2) 멸망하는 소돔, 고모라에서 롯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존재를 증명하신 것도 ‘여호와 삼마’ 의 역사였습니다.

(3) 멸망당하는 여리고 성의 함락에서 기생 라합과 그의 가정이 체험한 구원의 은총도 ‘여호와 삼마’ 의 축복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여리고 성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함락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데, 기생 라합은 ‘그 곳에’ 거하셨던 하나님의 존재로 인해 유일하게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4)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침노에서 다윗이 승리하였던 것도 ‘여호와 삼마’ 의 은혜였습니다. 칼과 창을 들고 나서는 골리앗에, 다윗은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당당히 맞섰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믿음에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해 주시는 것으로 보응해 주셨습니다. 바로 ‘여호와 삼마’ 의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5)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풀무 불 속에서 체험한 것도 ‘여호와 삼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평일보다 7배나 뜨거운 불로 인해 그들을 집어넣은 병사들이 타 죽을 정도로 뜨거운 풀무 불 속에서도 그들이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은 풀무 불 속에서까지 그들과 함께 해 주셨던 ‘여호와 삼마’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단 3:24-27).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놀랍습니다. 뜨거운 풀무 불 속, 그 곳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천국은 원치 않고, 하나님이 계시면 지옥이라도 나는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했던 어느 목사님의 신앙 고백처럼, 아무리 지옥 같은 풀무불이라도 하나님께서 거하실 때 그곳이 바로 천국이요 축복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6)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 앞에 섰을 때 ‘여호와 삼마’ 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앞에서 백성을 인도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급히 진 뒤로 옮겨갈 때 구름기둥도 함께하여, 밤새도록 애굽의 군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어해 주고 있는 현장, 그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해 주셨던 것입니다(출 14:15-20).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요, 애굽의 군대가 있는 곳에는 캄캄한 흑암만 있었다는 것은 ‘여호와 삼마’ 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거하는 곳에 함께 하셔서 그들을 지켜 주고 보호해 주시고 계셨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여호와 삼마’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한 개인의 건강과 형통도 ‘여호와 삼마’ 의 축복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사람이 어찌 건강할 수 있으며 형통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인다 할지라도, 아무리 좋은 건물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아무리 찬양이 뜨겁다 할지라도, 아무리 기도 소리가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람이 많이 모이든 많이 모이지 못하든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좋은 건물이든, 형편없는 건물이든,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3. ‘여호와 삼마’ 하나님과 함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 두시고 날마다 그들을 만나시고 교제하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아브라함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이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고 그 일을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강제로 행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우리들이 마음을 열고 그분을 모셔 들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틈만 있으면 밀고 들어가서 주인이 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어주면 들어오시고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들어오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하나님의 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실 때 우리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되지만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명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지만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씨를 뿌리라고 하실 때 순종하여 뿌려야 합니다. 순종하면 때가 되면 열매를 따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지만 불순종하여 씨를 뿌리지 않으면 축복의 열매를 다지 못하게 됩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사르밧 과부가 받은 축복이 나옵니다. 몇 년간 비가 오지 않아서 양식이 떨어진 상태에서 하나님의 명령이 사르밧 과부에게 임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야 선지자를 대접하라는 명령입니다. 인간적으로 잔인한 명령 같습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져가고 남은 것이라고는 한 끼 정도의 양식이 전부인데 그것을 하나님의 종을 공궤하라는 것입니다.

명령은 하나님이 하셨지만 순종할 것인가 불순종할 것인가는 사르밧 과부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축복을 위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드렸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지면에 비를 내리는 날 까지 가루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2) 기도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장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시는데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이유를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금심을 알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어 기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도행전 2장에 보면 하나님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임하셔서 택한 백성들과 함께 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믿음의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전혀 기도에 힘을 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도하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가족 구원을 원하시는 분들은 교회로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생업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원하시면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특별한 문제를 해결 받기 원하시는 분들도 나와서 기도하십시오.

3)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놀라운 비전이 임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스가랴서 4장 6절을 보면 힘으로도 능으로도 아니 되는 일이 성령으로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큰 산 같은 문제도 성령이 함께 하시면 평지가 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보면 성령을 받기 전과 성령을 받은 후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 받기 전에는 주님을 보인하고 저주가지 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난 후에는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삼손에게 성령께서 머물러 계실 때와 성령께서 그를 떠나셨을 때도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그에게 가장 큰 차이는 능력의 차이입니다. 성령이 머무실 때는 엄청난 능력을 행하던 삼손이 성령이 떠나고 나니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적들에게 잡혀 눈이 뽑히는 비참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4)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더러움이 조금도 없으신 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깨끗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재 하시기 전에 먼저 정결함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십계명을 받기 전에 목욕하고 정결하게 준비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들의 내면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깨끗한 존재로 서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며 이미 더러워졌다는 것입니다. 더러워진 인간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하시는 주님을 누리려면 깨끗해 져야 합니다.

감사한 일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게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거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지은 죄도 자백하기만 하면 다 용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일 1:7,9).

5) 하나님이 계신 곳을 찾아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 올라갔던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라는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을 보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믿는 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건물에서 매주 정해진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모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기 때문에 우리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모이기는 해도 주님의 이름이 아닌 우리들의 이름으로 모인다면 우리의 모임은 교회가 아닙니다.

저를 만나려면 제가 있는 곳을 찾아오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찾아와야 합니다.

6) 하나님의 일을 하는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을 보면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신 후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온전하게 순종하십시오. 헌금도 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봉사도 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마치 농사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파종할 때가 있고 추수할 때가 있습니다. 파종할 때 파종하지 않다가 때가 지난 후에 파종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추수할 대 추수 해야지 때를 놓치면 곡식이 썩어서 추수할 수 없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주님의 재림에 관한 비유적 예언입니다. 세 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세 가지 모두 준비할 때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할 수 있을 때 일해야 합니다. 대가 지나면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4. ‘여호와 삼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실패하고 병들고 외로울 때, 나 혼자라고 생각할 때 불행합니다. 다 나를 버리고 나 혼자 남았다고 생각할 때 불행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당했다고 생각할 때 불행합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끝까지 나와 항상 함께 있어 준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은 정말로 행복한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려도 ‘여호와 삼마’ 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존재일지라도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범죄한 다윗은 회개하면서 기도하기를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1)라고 애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져버린 개인, 민족, 교회는 영원히 버림받은 존재일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 버림 당한다는 것은 최고의 저주요 최고의 불행인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욕이 무엇이냐 하면 ‘갓뎀 유(Goddamn You)’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이 너를 떠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난다는 것은 결국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욕이 가장 저주스러운 욕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느 곳에 가든지 나와 항상 함께 계신다고 하는 ‘여호와 삼마’ 는 가장 큰 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2)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기를 임신한 임신부들은 여러 가지를 조심합니다. 너무 요란한 곳에 가면 태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해서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음식도 삼갑니다. 너무 자극적인 것을 피하려고 합니다. 감기가 들어도 태아에게 나쁜 영향이 미칠까봐 감기약을 먹지 않습니다.

하물며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데, 내가 어떻게 함부로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술이나 담배 같이 정결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내 안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혼자서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별로 조심하지 않습니다. 속도 줄이라고 만들어 놓은 턱을 보고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덜커덩 그대로 넘어갑니다. 신호도 슬쩍슬쩍 위반합니다. 그러나 자동차에 귀한 손님이 타고 있으면 조심조심 운전을 합니다. 파인 곳은 피해 가고 안전하게, 안전하게 운전하기를 힘씁니다.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서 거기에, 내 안에 계시는데 어찌 거칠게 행동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도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것을 더욱 분명히 알고 하나님을 모신 사람답게 경건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신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곳에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여호와 삼마’ 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의 이름도 오늘 이후로는 ‘여호와 삼마’ 가 되어야합니다.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 집안이 되어야 합니다. 명문 집안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케네디 가문, 부시 가문, 록펠러 가문, 안동 김씨 가문 등의 이름을 갖고 그 가문을 빛내고자 힘쓰고 조심합니다.

믿는 사람들의 가정은 ‘여호와 삼마’ 라라는 이름을 가진 가문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명문 가문의 이름보다도 영광스러운 이름이고 존귀한 가문의 이름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들은 오늘 이후로부터 ‘여호와 삼마’ 의 가문들이 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문을 빛내기 위하여 조심하고 선한 일에 힘쓰며 살아야 합니다.

결론 : 에스겔 선지자는 자신이 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말인데, 이는 여호와께서 새 이스라엘 공동체와 항상 함께 하시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삼마’ 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드리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 구석구석 가득 넘쳐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바로 여기에 계십니다. 위험한 곳에 있을 때에도, 안전한 곳에 있을 때에도, 건강한 몸으로 있을 때에도, 아픈 몸으로 힘들어 할 때에도, 바로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우리도 ‘여호와 삼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순복음한마음교회 / 염두철 목사

불낙지교회 / 불신자(不信者), 낙심한 자(落心者), 지체하는 자(遲滯者)를 주님 앞으로

여호와 삼마(에스겔 48:35)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The name of the city from that time on will be: The LORD is There.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또는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신다.”고 가르치는 사례가 자주 소개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 합니다.

그렇다고 “여호와 삼마”를 확장 해석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해석은 본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에스겔서에서 “거기”는 “예루살렘”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계신다.” 라고 이해하면 바르게 이해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너무 과장 확대 해석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해석에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을 합리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바른 해석을 위해서 먼저 본문에 집중해야 합니다.

본문에 집중하려면 시작하는 말씀과 마지막 말씀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어떤 책으로 분류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가 선택한 본문은 선지서 “에스겔”입니다.

“에스겔(Ezekiel)” 이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심”이란 뜻입니다.

부시의 아들로서 유대인의 제사장이며 4대선지중의 한 사람으로

유대왕 여호야긴과 같이 포로가 되어 갈대아땅 그발 하수가에 거주하는중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에스겔서를 기록하였다(겔 1:1-3).

그 글에서 그의 비범한 인물 됨을 발견할 수 있고 기재를 나타냈으며

곧 목이 곧 고 마음이 강팍한 그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함을 담대히 공격한 기록에서

대선지로서 적임자임을 보여 주었고 종신토록(20년간) 선지의 직무 에 진력한 것은 일대 특색이다.

예레미야 선지는 정신적 종교가임에 반하여 에스겔은 의식적, 형식적 방면에 중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의 예언의 요지는 예루살렘의 망할 것과 장래의 구원으로 본국이 회복될 것으로 포로된 동포를 위로 하였다.

그의 죽은 시기는 알수 없으나 바벨론에서 같은 지도자에게 피살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의 이락의 수도 바그닷드 근처의 한 건물을 가리켜 에스겔의 분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에스겔은 성경학자들이 “대선지서(大豫言書, Major Prophets)”라고 설명합니다.

대선지서란 그 내용이 소선지서보다 많기 때문이지 선지자가 더 크고 위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선지서에 속한 성경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말합니다.

에스겔서의 첫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에스겔 1:1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In the thirtieth year, in the fourth month on the fifth day, while I was among the exiles by the Kebar River, the heavens were opened and I saw visions of God.

제 삼십년 사월 오일이란 현대인의 성경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서른 살이 되던 해 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가 삼십 세가 되었을 때 사로잡힌 자 즉 포로가 되어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환상을 본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삼십 세가 되었을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나이에 따라 행해야 할 삶이 있습니다.

10세 때는 유(幼)라고 하여 이때부터 배움을 시작합니다.

20세 때는 약(弱)이라고 하여 비로써 갓을 쓰게 됩니다.

30세 때는 장(壯)이라 하여 집을 갖고 결혼을 합니다.

사람은 자기 나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30세 즉 장(壯)에 해당하므로 집을 갖고 결혼하여 아내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벨론 땅으로 끌려온 포로 선지자로 그발 강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나이에 합당한 삶이 아닌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에스겔 48:35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The name of the city from that time on will be: The LORD is There.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전체 둘레는 약 9.5킬로미터이다. 사람들은 그 성을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이라 부를 것이다.”

“여호와 삼마”를

“야훼 삼마”(공동번역)

“여호와 샤마”(새번역)

“아도나이 샤마”(히브리 성경) 라고 합니다.

에스겔서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에스겔을 비롯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렀던 그 성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삼마는 임마누엘의 의미가 아닙니다.

더구나 여호와께서 지금 여기에 계신다는 의미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깨닫지 못하였을 때

바벨론의 포로가 된 상태에서 돌이켜 보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다는 믿음을 확신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는 나이가 들면서 뒤늦게 깨닫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예루살렘에 대한 은총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에 “그발 강”가에 모여서 예루살렘을 회상할 때

비로써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함께 계셨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에야 예루살렘에 대한 그리움과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일까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심각한 전염병에 의해서 이전에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새로운 것들로 인하여 깨닫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주일 예배

매주일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하던 성도들이 이제는 함께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온라인 유튜브를 이용하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예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뉴욕에서는 어느 교회가 사회적 거리를 두고 예배를 시작했으나 감염자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또 다시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였다고 합니다.

한동안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던 중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족들도 같이 앉지 못하고 거리를 유지하며 예배할 때 처음에는 매우 감격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송을 하는 사람도 마스크를 사용하고 설교자도 마스크를 사용하는 낯선 광경을 보며 예배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어 차라리 온라인 예배가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다고도 합니다.

그 결과 매 주일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예배하던 “대면 예배(對面 禮拜)”가 금지될 때에 비로써 주일마다 함께 모일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둘째는 가족 모임

저희 가족들은 매월 마지막 주일 저녁 시간에 저희 집에 모두 모여서 식사하며 지난 일들을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지난 3월 이후부터 가족 모임조차도 모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다 환경 때문에 가족의 만남이 얼마나 좋은 시간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셋째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과 일터

자영업자들 특히 음식점의 경우 손님들이 음식을 주문하면 출입구에서 찾아가므로 영업에 상당한 손실이 크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세 자영업자들은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파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 합니다.

예로부터 “철들자 노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뒤늦게 깨닫게 되었으나 깨달은 것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기 전에 정신이 흐려졌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처럼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몰랐구나! 하고 후회하는 것처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는 후회가 없는 신앙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는 근거 없는 희망

바벨론 그발강 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늦에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까달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곧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70년 후에 돌아가게 될 것” 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25:11-12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예레미야 29: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바꾸어 말하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곧 멈추거나 아니면 백신을 발명하여 다시 예전처럼 일상적인 생활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근거없는 희망을 버리고 분명한 목표를 찾아야 합니다.

바벨론 땅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사람들 중에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고,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선지자는 70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70이란 숫자의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첫째, 종심(從心)

사람의 나이 70을 “종심(從心)”이라고 합니다.

종심이란 사람의 나이가 70이 될 때 비로써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지만 절대로 법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종심을 신앙적으로 설명한다면 철저한 회개를 거쳐야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70년이란 과거에 예루살렘에서 누렸던 모든 것들이 진정 하나님의 은혜이었으며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므로 다시는 하나님의 법을 떠나 마음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징적인 수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7은 매우 신성한 의미를 갖는 수라고 하겠습니다.

창조 후 7일째 안식하셨으며

속죄의 상징으로 제물의 피를 일곱 번 뿌린다.

7은 맹세와 동의어를 의미합니다.

숫자 ’70’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그것의 기본수인 ‘7’에서 찾을 수 있다.

‘7’은 일반적으로 완전을 의미한다.

그것은 ‘7’의 어원적 의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메르어나 아카디아어에서 숫자 7은 ‘온전함’ ‘전체’를 뜻하고,

우가릿어에서도 ‘완성’ ‘완결’을 의미한다.

7은 완전을 의미하는 3과 4의 결합이기도 하다.

3은 삼위일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늘의 완전수이다.

반면 4는 땅의 완전수인데, 그것은 사방으로 땅 전체를 표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7은 하늘의 완전수와 땅의 완전수가 결합된 최종적인 완전수라 할 수 있다.

숫자 7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알파벳 “자인(ז)”이라고 합니다.

7을 ‘쉐바(שבע)” 라고 합니다.

쉐바가 명사형으로도 사용하지만 동사로 사용할 때는 “저주하다, 맹세하다”라는 뜻입니다.

쉐바와 연관된 단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밧세바(בַּת-שֶׁבַע) – Bat Sheva / 바트( בַּת) + 쉐바 ( שֶׁבַע) 여자(나이) + 7

브엘세바 –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는 내용에서 ‘맹세’와 함께 ‘일곱'(암양 새끼 일곱)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나,

그곳 우물의 이름을 ‘브엘세바'(브에르쉐바; ‘맹세의 우물’ 혹은 ‘일곱의 우물’)라고 한 것은 숫자 7과 그 숫자가 지닌 의미를 긴밀하게

연관시킨 좋은 예이다(창 21:28-31).

둘째, 노역 기간으로서의 70년(이사야 40: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는 것은 노역의 때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곧 이스라엘의 죄악이 사함을 받은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에서 ‘노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차바’는 전쟁을 위하여 강제로 동원된 병역기간을 의미한다.

표준새번역에서 이것이 ‘복역기간’으로 번역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벨론 포로기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부여한 복역의 때였다.

그것은 정해진 기한이 지나면 곧바로 원래 상태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도 예레미야서에서와 같이 ‘끝나다’에 해당하는 동사로 ‘말레’를 사용하고 있다.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은 곧 복역의 기간이 채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사야가 선포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별도의 조건이 따로 필요 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근거하고 있다(이사야 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셋째, 이스라엘 회복 근거로서의 70년(스가랴 1:12, 7:5, 8:19)

1:12,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7: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8:20-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은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예언하고 있는 스가랴서에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스가랴서의 첫 번째 환상 속에서 여호와의 천사는 여호와께서 폐허화된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70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슥 1:12).

그런 스가랴의 입장은 70년 동안 지켜온 다섯 차례의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으로 이어진다(슥 7:5).

그에 대한 스가랴의 답변은 더 이상 금식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70년의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금식은 오히려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었다는 것이 스가랴의 최종적 선언이다(슥 8:19).

넷째, 땅의 안식년으로서의 70년(역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바빌론에서의 70년 포로기간을 땅의 안식년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 황폐되었던 본토의 땅은 오히려 안식을 누리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땅은 새로운 축복의 잠재력을 준비하는 기간이 된다는 긍정적 평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빌론에서 보낸 포로기간은 외견상 절망의 시기로 보였겠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시는 기회 곧 땅의 안식년인 셈이었다.

70년과 관련된 성경에서의 실제적 적용

1. 인간 수명으로서의 70년(시편 90: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70세를 종심(從心)

80세를 팔질(八耋), 장조(杖朝)

– 장조(杖朝)는 중국 주나라 때 여든 살이 되면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는 것을 허락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 지팡이 장, 아침 조

– 팔질(八耋)은 여덟 팔, 늙은이 질

90세를 졸수(卒壽)는 마칠 졸, 목숨 수

시편 90편은 인간의 한평생 수명을 70으로 보고 있다.

성경이 사람의 수명을 그렇게 본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모세의 기도’라는 제목을 통해 이 시편의 저자는 모세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인간 수명을 70으로 설정한 것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출애굽 당시 전쟁에 출전할만한 장정들의 나이는 20세에서 40세였다.

이들은 모두가 광야방랑기간인 38년 안에 그들의 생애를 마쳤다.

그렇게 되면 출애굽 당시의 장정들은 대략 60세에서 80세를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모세는 사람의 일반적 수명을 70으로 보았고, 강건하면 80까지 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2. 한 왕의 연한으로서의 70년(이사야 23:15)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년한 같이 칠십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칠십년이 필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

70년과 관련된 또 다른 성경의 언급은 한 왕의 연한이다.

여기에서 왕이란 개인 아니라 그 왕이 통치하는 전체 공동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곧 한 왕의 통치를 받는 한 국가 공동체의 운명이 70년으로 제한된다는 성경적 관점이다.

그와 같은 성경적 관점과 관련하여 주목할 내용이 있다.

그것은 20세기의 최대 사건이기도 한 공산주의의 발흥과 쇠퇴가 70년 주기와 관련된다는 점이다.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은 1917년 시작하였으나 1987년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말았다(70년)

20세기는 소련의 공산주의혁명으로 시작되어 소련 공산주의의 해체로 마감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소련을 비롯하여 중국과 몽골의 공산주의 정권 모두가 70년 만에 종말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들 세 나라는 모두 우리의 인접국이면서 우리나라의 분단역사와 긴밀하게 연관된 나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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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 예표, 예언 하나님의 뜻 성취 1:4~28 보좌 환상 ( 폴풍과 큰 구름, 네 생물의 형상, 바퀴, 궁창과 보좌) 2:1~ 3:15 두루마리를 먹음 이스라엘 족속에게 하나님의 말을 고하라 3:22~27 말 못하는 자가 되다 무리가 에스겔을 죽일까하여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심 4장 토판 위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그림을 그리다. 390일동안 왼쪽으로 누워있다. 오른쪽으로 사십일을 누워있다. 인분 불에 떡을 구워먹다. 이스라엘이 죄악 390일을 감당하고 유다의 40년의 죄악을 감당하였다. /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시니 여러 나라들로 쫓아내어 흩어 버릴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5장 머리털과 수염을 깍다 1/3 성읍 안에서 불사름 1/3 성읍 사방에서 칼로침 1/3 바람에 흩으라 1/3 전염병과 기근으로죽다 1/3 사방에서 칼로 엎드러짐 1/3 사방에 흩어버리고 뒤를 따라가며 칼을 뺌 8장 불 같은 형상과 질투의 우상, 담 속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이 그려져있는 벽과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다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10~11장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다. ( 네 생물과 바퀴, 보좌) 예루살렘의 심판 12:1~16 포로 될 것을 나타내는 상징행위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다) 이스라엘 족속이 바벨론으로 끌려감 12:17~20 떨면서 먹고 마시며 보이는 징조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그들이 근심하면서 음식을 먹으며 놀라면서 그 물을 마실 것 13장 거짓선지자의 종말 15장 불에 던질 땔감 같은 예루살렘 주민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17:1~21 독수리와 포도나무비유 예루살렘의 왕과 고관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고 거기에서 죽을 것이다. 20:45~49 불타는 숲의 비유 21장 여호와의 칼 네가 지음 받은 곳에서 네가 출생한 땅에서 내가 너를 심판하리로다 25:1~7 암몬 족속에 대적하여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넘겨주겠다. 진을 치며 네 가운데에 그 거처를 베풀며 네 열매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지라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넘겨 주어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서 끊어 버리며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패망하게 하여 멸하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25:8~11 모압 족속을 대적하여 암몬족속과 더불어 동방 사람에게 넘겨 주어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25:12~14 에돔 족속을 대적하여 에돔이 유다 족속을 쳐서 원수를 갚았고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 25:15~17 블레셋 족속을 대적하여 손을 펴서 그렛 사람을 끊으며 해변에 남은 자를 진멸하되 내가 그들에게 원수를 갚은 즉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시니라 26:1~28:19 두로를 대적하여 두로에 관한 일련의 예언 28:20~26 시돈을 대적하여 전염병을 보내며, 29:1~32:32 애굽을 대적하여 바로를 대적한 심판 애굽 땅의 황폐함 포로에서의 귀환이 약속됨 34:1~31 선한목자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책망받음 35:1~15 에돔의 산들 이스라엘의 산들 에돔을 대적하는 예언 네 성읍을 무너뜨리며 세일 산이 황무지와 폐허가 되게 하여… 36:16~38 내적갱신 정결하게 하되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걸하게, 또 새 마음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37:1~14 마른뼈의 환상 (죽은 자들의 뼈가 살아난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37:15~28 마른뼈의 환상 (재통일)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난가 되리라,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40:1

~48:35 이상 중에 본 성읍 성전에 관하여 성전 의식 그 땅을 분배함

히브리 알파벳의 의미

– 시편에 보면 이상한 용어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뜻은 알파벳 숫자입니다.

1. 알렙 ㅡ 숫소

2. 베트 ㅡ 집

3. 기멜 ㅡ 낙타

4. 달렛 ㅡ 문

5. 헤 ㅡ 보라, 계시하다, 숨구멍

6. 와우 ㅡ 못, 갈고리

7. 자인 ㅡ 무기, 연장

8. 헤트 ㅡ 울타리

9. 테트 ㅡ 뱀

10. 요드 ㅡ 손

11. 요드 알레프

20. 카프 ㅡ 굽은 손, 발바닥

30. 라메드 ㅡ 소 몰이 막대기

40. 멤 ㅡ 물

50. 눈 ㅡ 물고기

60. 싸멕 ㅡ 지주

70. 아인 ㅡ 눈

80. 페 ㅡ 입

90. 짜데 ㅡ 낚시바늘

100. 코프 ㅡ 뒷통수, 바늘 귀

200. 레쉬 ㅡ 머리

300. 쉰 ㅡ 이빨, 치아

400. 타브 ㅡ 십자가, 마크, 표시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서 여기 계신다” 에스겔 48장

“여호와 삼마, 하나님께서 여기 계신다” 에스겔 48장 0. 에스겔 48장 48장은 에스겔의 마지막 대망이다. 40장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의 종결이다. 성소(성전), 경외(경배), 영토(땅)으로 이어진다. 창세기에서 아담의 타락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됨으로 인해 실낙원하고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었다. 참된 삶의 회복은 예배로부터, 몸의 회복은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마치 아버지의 품을 떠난 탕자가 사는 길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데 있듯이 무너진 관계가 제자리를 찾아 복원되는 ‘회개’가 회복의 길임을 증거 한다. 에스겔의 마지막 메시지는 ‘여호와 삼마’(하나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다. ‘임마누엘’(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이다. 에스겔의 대망은 한마디로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고백에 있다. 에스겔이 전하는 하나님의 나라(천국)는 죽음이후의 내세적 공간만이 아니다. ‘오늘 여기’삶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통치다. 비록 바벨론 중이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다. 창세기의 요셉은 애굽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경험했다. 출애굽기의 히브리백성은 광야에서 성막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목도했다. 신앙의 목적, 믿음의 대망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의 조건이 환경과 상황이 아니라, 회개(정화)와 경외(경배)통한 준행(순종)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1. 열 두 지파의 기업 ➀ (1절~7절) “모든 지파의 이름대로 이 같을찌니라…곧 북으로 하맛 지계에 미치는 땅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단의 분깃이요” ▶ 열 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규칙이 있다. 북방 일곱 지파(단,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유다)와 중심에 거룩한 땅인 성소(제사장, 레위인, 성읍, 왕) 그리고 남방 다섯 지파(베냐민,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갓)순이다. ‘분깃(Portion, 몫, 믿음의 분량)대로’ 나누어진다. 열 두 지파의 분배 위치와 순서는 세속적인 장유유서가 아니다. 사명과 은사는 나이순, 연조순, 직분순이 아니다. 크든 작든 주신대로 감당할 뿐이다. ▶ 땅의 ‘지계’는 곧 경계선(북방 한계선)이다. 하나님이 주신 땅은 무한대가 아니다. 인간의 유한성, 제한성을 보여준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 땅이 필요한가(톨스토이)’ 땅은 소유가 아니라 임대(청지기)다. 때가 되면 주신 분께 다시 돌려 드려야 한다. ‘동편에서 서편까지’ 해 뜨는데 부터 해 지는 데까지 넉넉하고 충만하게 주신다. ② (23절~29절) “갓의 지계 다음으로 남편 지계는 다말에서부터 므리바가데스 물이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니 이것은 너희가 제비뽑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 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또 이것들이 그들의 분깃이니라” ▶ 나머지 남방 일곱 지파에게 땅을 분배한다. 총 열 두 지파에서 ‘12’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만수(택하신 모든 열방과 민족)를 통칭하는 은유다. (12사도, 24장로, 144,000명) 47장에 서 살핀 대로 하나님의 기업은 선민 이스라엘에게만이 아니라 거주하는 외인(이방인)들에게도 차별 없이 분배된다. ▶ 한 가지 더 중요한 분배원칙은 ‘제비뽑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 기업이 되게 할 땅’이라는 점이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부여 받은 것(청지기)이기에 그 뜻대로 선용해야 하고, ‘피차없이’ 공평하고 공정하게 나누어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 2.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드릴 땅 ➀ (8절~9절) “유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찌니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장이 이만 오천척이요 광이 일만척이라” ▶ 영토의 중앙을 거룩한 땅으로 구별하여 예물로 드리고 그 한 가운데 하나님의 성소가 위치한다. ‘예물로 드릴 땅(offer the Lord)’에 우선순위를 두는 까닭은 본래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먼저’ 하나님의 자리(성소)를 구별하라. 창세기에 기록된 에덴동산의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이유와 동일하다. ② (10절~11절) “이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찌니…이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찌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들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제사장의 기업은 하나님이시다. 모든 제사장이 아니라 신실한 제사장들이다. 우상숭배로 타락한 제사장들을 파면하시고 새롭게 세운 거룩한 제사장에게 부여된 은총이다. 제사장의 책무와 그에 합당한 권리를 보장하신다. 오늘날 지위에 따른 혜택은 누리면서 합당한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의 문제다. ③ (13절~14절) “제사장의 지계를 따라 레위 사람의 분깃을 주되 장이 이만 오천척이요 광이 일만척으로 할찌니…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나 여호와에게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니라” ▶ 레위인에게 주신 기업은 ‘매매(거래)’ 및 ‘교환’이 불가하다. 고유의 목적인 하나님을 섬기는 용도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교회의 사유화와 세속화를 경계한다. 주님의 것을 내 것처럼 쓰면 안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과제는 사유화, 세속화를 막고 본래적인 거룩함을 회복해야 한다. ‘처음 익은 열매’는 가장 소중한 것을 나타내는 은유다. 모든 것이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선물, 만나)를 기억하는 데 그 정신이 있다. 3. 거룩한 도성과 왕의 땅 ➀ (15절~20절) “이 이만 오천척 다음으로(맞은 편) 광(높이) 오천 척은 속된 땅으로 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하는 곳과 들을 삼되 성이 그 중앙에 있게 할찌니 그(성의) 척수는 북편도 사천 오백척이요 남편도 사천 오백척이요 동편도 사천 오백척, 서편도 사천 오백척” ▶ 레위인의 땅 건너 편(성소, 거룩한 땅)에 성읍 즉 도성(city, castle)을 정방형으로 세우게 하신다. (아래 그림) ‘속된 땅’은 나라를 관리하는 관원(공무원)들의 기업이다. ‘그 땅의 소산은 성읍에서 거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찌라…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성읍의 기지와 합하여 네모 반듯할 것이니라’ 왕의 기업 레위인의 기업 왕의 기업 성 소 ■ 제사장 도성 (베냐민지경) ➁ (21절~22절) “거룩히 구별할 땅과 성읍기지의 좌우편에 남은 땅은 왕에게 돌릴찌니 ” ▶ 왕이나 군주가 가장 좋은 땅을 갖는 게 아니라 ‘남은 땅’을 돌린다. 본래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시다. 왕은 위임받은 관리자인 섭정일 뿐이다. (마20장 25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권세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는 세상의 권세자들처럼 선민의식, 특권의식으로 텃세를 부리거나 왕 노릇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왕이시고 주님이 교회의 머리시기 때문이다. 4. 여호와 삼마 ① (30절~34절)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편의 광이 사천 오백척이라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 세 개로 총 열 두 개의 열린 문이 있다.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 (계21:12~13)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12라는 숫자(12지파, 12기초석, 12사도)는 만수로 택하심을 받은 모든 백성들을 가리킨다. ② (35절)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 ‘그 성읍의 이름을’ 성읍은 도성(城, City, Castle)이다. 예루살렘성(샬롬, 평화의 도시)에서 여호와삼마(주와 동행)로 이름이 바뀐다. 참된 평화는 주와 동행이다. (시편18:2)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요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며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여러분의 산성(구원)은 누구인가? 예수그리스도다. ▶ 여호와삼마 : 하나님께서 여기에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임마누엘)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에스겔의 대망이다. 창세기의 대망(요셉은 비록 종살이, 옥살이, 애굽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하나님의 통치 실현 VS 아담은 비록 에덴동산이었지만 불순종 할 때 실낙원), 출애굽기의 대망(말씀대로 성막을 짓고 회중 가운데 임재 하신다)도 동일하다. 신앙의 목적(최종 목표, 최고의 경지)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동행과 임재는 어떻게 가능한가? 에스겔은 회개(정화), 경외(성소, 예배), 준행(말씀대로) 할 때 동행하심을 선포한다. ※지금까지 에스겔 강해와 함께 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부터 다니엘서 강해로 이어갑니다. 에스라 말씀학교 제1기 – 창세기 말씀사경회 일 시 : 2019년 6월17일(월) 오전10시~19일(수) 오후4시, 2박3일(인텐시브 코스) 장 소 : 기독교대한감리회 강릉예향교회 강릉시 율곡로 2747번길 13 (033-646-3395) 대 상 : 말씀을 사모하는 이들 누구나 (목회자, 신학생, 평신도) 등록비 : 20만원 (국민은행 042602-04-019875 예금주 : 김명섭) 신청/문의 : 20명 선착순 마감 (6월7일까지) 010-3289-3619, 033-646-3395, [email protected] ▶ 자세히보기(링크)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2074 ▶ 참가신청서(링크) https://forms.gle/MZ61oGexmJ219id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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