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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요송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요한복음1장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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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개역한글 (KRV) | 지금 성경 앱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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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큐티 나눔터 | 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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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요1) – 박승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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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큐티 나눔터

요한복음 1장 11-13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니’

이 말씀이 써지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이러한 상황을 예언하였다.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은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

또 다른 곳에서 이르기를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사 53:8) 라고 하였다.

이 예언은 영접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멸시를 당하고 죽으실 것까지 예언한 것이다.

그들이 멸시한 예수님은 그들이 그렇게 고대하던 메시야 그분이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생명으로 오셨지만

그 빛을 깨닫는 자는 소수의 중생한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조금도 인정하시지 않는가? 그렇다. 조금도 인정하시지 않으신다.

말씀이 이토록 자명한데도 어떻게든지 구원에 있어서 자기 의를 첨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요1) – 박승현 목사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1:12-13)

-다르게 표현하면 영접하는 자는 영접 받는 자를 말한다-

세상에서도 영접(대접) 할 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서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빛 된 존재를 영접(대접)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며 영접(대접)하려는 자는 영접(대접) 받는 자의 의도대로 영접(대접) 해야 한다. 세상에서는 영접 받는 자의 의도 이상으로 영접 할 수 있겠지만 신앙 세계에서는 영접 받는 자의 의도 이상으로는 영접할 수 없는데 영접 받는 자의 의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최고의 영접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서 말하고 있듯이 영접 받는 자의 의도는 자신의 생명 된 빛을 영접 하는 자가 받아 들여서 그 자신의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는 것이다. 즉 영접 하는 자가 삶을 스스로 속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지 영접 받는 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영접 받는 자는 영접 하는 자가 영접 받는 자처럼 생명의 빛을 자기 안에 소유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것을 마태복음에서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1-12)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무엇이든지 너희에게서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영적인 존재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성령의 열매적 삶을 자신의 주변 사람이 받아들여 (영접해서) 자신처럼 살게 되어지길 바랄 뿐이다. 바울은 자기를 재판하도록 로마에서 파송된 베스도 유대 총독과 아그립바 왕에게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행26:24-29참조)고 하였다.

요한복음에서는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고 했지만 마태복음에서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이 영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였다. 구하기만 한다고 영접할 수는 없다. 구하고 찾기만 한다고 영접할 수도 없다. 구하고 찾은 다음 두드려야만 영접할 수 있다. 구하는 자가 있으나 정작 찾는 이가 적고 찾은 자가 더러 있으나 두드리는 자가 없다. 또한 있었다고 하나 천국 문의 문고리를 모르기 때문에 두드리다 지쳐 버린다. 마태복음 7장 9절 이후 말씀에서는 우리가 두드리면 그 분이 열어주시는데 그 분이 열어주셔도 우리 쪽에서 그분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하신다. 우리가 그 분을 향하여 두드리듯 그분도 우리를 향하여 두드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고 하셨다. 그 분은 열어주셨는데 우리 자신이 그 분에 대해 문을 걸어 잠그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영접한 자의 권세

영접은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사람의 노력을 기본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될 때에 가능하다. 말씀을 똑같이 들으나 듣는 자의 마음가짐과 전하는 자의 마음이 하나님과 맞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을 영접할 수 없다. 그래서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지는 못했다. 바리새인들의 말씀이 옳은데도 그들은 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할 수 없었는가 알 수 있다.

성경에서는 말씀이 피와 살 같은 말씀일 때라야 성령이고 진리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피와 살 같은 말씀을 전하셨다. 피와 살이 없는 바리새인들의 하는 말도 말은 옳게 들려진다. 그러나 그 옳은 말이 무엇을 위해 옳은 것인가가 문제이다. 자기를 높이기 위한 수단과 상대방을 부리기 위한 수단으로 옳은 말을 하는 것은 피와 살이 없는 말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상대에게도 시키지 말라’ 는 격언이 있듯이 성경은 단호하게 말하기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였다.

한편 성경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하였는데 먹은 자는 마땅히 일을 해야 한다. 먹되 일하지 아니하는 자는 게으른 자요, 게으른 자를 죄 없다 아니 하신다고 하셨다.

인자의 피를 마시고 인자의 살을 먹었다면 인자처럼 인자의 남은 육체의 고난을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육체에 채워야 할 것이다 (골1:24참조). 이렇듯 살과 피를 내어주는 삶을 산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누리는 권세를 누린다. 그 권세 중에 첫째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권세이다. 비천에 처하되 비굴하지 않고 풍부에 처하되 교만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내게 허락한 어떠한 여건에서도 모든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이다. 둘째는, 선한 자나 악한 자나 구분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권세이다. 선한 자에게는 고맙고 감사하고 존경하는 사랑을 하게 되며 (마6:45 이후 참조) 악한 자도 긍휼이 여기며 그의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이 회계할 자인 것처럼 기도하면서 말씀을 전할 기회를 엿봐야 한다 (히13:17참조). 셋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복음으로 낳는 권세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는데 아비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의 자녀를 낳아야 한다. 신앙 세계는 결국 자기 같은 존재를 낳는 것인데 세상에서도 자기 같은 존재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천국과 지옥은 믿음에 의한 삶의 결과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피와 살로써 선한 자녀를 낳았다면 생명의 부활로 낳은 것이며, 바리새인들과 같이 피와 살이 없이 자녀를 낳았으면 심판의 부활로 낳은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요 1:1-18절, 2017년 1월 1-2일 성경묵상)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요 1:1-18절)

새해가 시작되면서 요한복음 묵상이 시작되었습니다. 복음서를 묵상하는 일은 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입니다. 그렇지만 아래 요한복음 강해를 보면 18절까지 무려 여섯 번을 설교할 만큼 밀도 있게 살폈던 내용을 다시 묵상하면서 간략하게 요약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닙니다.

따라서 묵상은 묵상이니 느끼는 대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사실 연말, 송구영신, 신년예배, 새해 일꾼 임명, 요람 작업 등으로 연말과 연시는 정말 분주합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니 가장 먼저 성경묵상 생각이 가득합니다. 꾸준함이 능력이지…. 계속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채웁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다시 말씀 앞에 섭니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사도 요한입니다. 가장 오래 생존했던 사도 요한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요한은 요한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요20:30-31절에서 그 기록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니까 예수께서 기록한 많은 표적들 가운데 요한복음에 기록된 것들만 엄선한 까닭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요10:10절에서 주님은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이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과 그 얻은 생명을 더 풍성하게 누리는 것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모든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을 믿게 될 때 생명을 얻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요한복음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게 될 때 생명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요한은 이 글을 쓸 때 헬라인들과 유대인들을 다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특히 영지 주의적 영향에 노출되어 있는 당시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영지 주의적 영향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만나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영지 주의적 색채도 가미되어 있고, 헬라적 성향의 단어들도 채택되어 있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도세티즘적 경향을 염두에 두고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데에도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대적 성향이 짙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카멜레온과 같은 책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한의 모든 관심은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생명을 얻게 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하면서 요한복음을 읽어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1:1-18절을 서론, 21장을 결론 혹은 부록으로 하면서 1:19절부터 12:50절까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3장부터 20장까지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요한복은은 생명을 얻는 것에도 탁월하지만 또한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하는 데에도 탁월한 책입니다. 그래서 어린 신자들이 읽어도 단단한 식물을 먹을 만한 성숙한 신자가 읽어도 모두에게 귀한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이 복음은 성경 중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기록된 책이라고 보고 있기에 더욱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표적은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요한복음에 표적이라는 말은 17번 나오는데 그 가운데 11번이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을 지칭합니다. 요한은 이 표적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알려주는 계시적 기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요한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생명과 빛과 물과 같은 단어들입니다. 이 세 단어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잃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물로 심판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백성을 죄의 세력으로부터 해방하여 어두움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물(피)로 구원을 얻어 생명의 삶, 빛의 삶, 생수를 먹고 마시는 삶,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는 삶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바로 이 일을 가능하게 하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라는 것입니다. 빛과 물과 생명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입니다. 이런 창조사역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창조 사역, 즉 구속 사역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표적과 생명은 모두 믿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국 요한복음은 생명을 얻게 하는데 초점이 있기 때문에 자연히 믿음이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믿는다”라는 동사가 거의 100번 가량 사용되지만 “믿음”이라는 명사는 한 번도 사용하고 있지 않아서 요한의 이해 가운데 믿음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입니다. 표적을 보고 믿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지속적인 믿음 가운데 거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믿음은 한 번 확실히 믿는 믿음이 아니라 자라가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 외에 요한복음은 성령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비밀을 혹은 계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성령론이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체의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 생명이 더 풍성해지는 일을 위해서 요한이 주목하고 있는 주제들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 태초에 함께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1-5절은 오페라의 서곡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한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생명을 얻는 복음을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마태는 다윗의 자손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습니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예수의 출생부터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태초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시작하지 않고 말씀이 계셨다고 합니다. 로고스입니다.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특히 유대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만듭니다. 태초에 계신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생각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11절)고 말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할 때 그 말씀은 곧 창조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연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되었습니다. 헬라철학에서 로고스는 헤라클리투스 시대, 즉 주님 오시기 전 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헤라클리투스는 모든 인생이 변화의 상태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 같은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물에 담그고 다시 두 번째 담그기 위해서 들어간 순간 이전의 물은 흘러가고 또 다른 물이 흘러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생이 지속적으로 변화됨에도 혼돈스럽지 않은 것은 우리가 보는 변화가 그냥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인생을 조정하는 신적 이성, 또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신적 이성, 혹은 말씀이 바로 로고스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있어서 로고스는 우주 안에서 형체를 만들고, 정돈하며, 지시하는 원리였습니다.

또한 1세기에 북 아프리카의 유명한 유대인 교사인 필로(Philo)는 수많은 헬라 철학의 견해를 받아들인 사람으로 다양한 형상에 일상적으로 로고스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헬라 사상에서 로고스는 신적 질서에 참여한 자로서 바로 그 때문에 물질적이고 역사적인 세계와는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했을 때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헬라인과 유대인 모두의 주목을 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로고스가 곧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14절에서는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그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구절에서 뭐라고 말씀합니까?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태초의 창조에 함께 하신 로고스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4절에 뭐라고 설명합니까?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리고 창조에 함께 하셨던 로고스가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 어떤 생명입니까?

창세기에는 에덴동산에 생명나무가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처음 생명나무가 등장하는 창2:9절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는 것 외에 다른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인간이 타락하고 나자 생명나무가 갑자기 중요한 나무로 부각되면서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지키시는 나무가 됩니다. 따라서 생명나무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시점은 타락이전이 아니라 타락 이후입니다. 이 말은 타락 이전의 인간은 생명나무의 유무와 상관없이 영생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가지고 약속을 체결하실 때 그 열매를 먹는 날에는 죽고 또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의 죽음은 영적, 육적인 죽음 모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인간은 타락함으로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적인 죽음과 육체적으로 사망이 왕 노릇하는 죽음의 법에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생명나무가 정말 필요한 시점은 타락 이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생명나무는 더 이상 접근이 불가능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죄와 사망의 법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스스로 영생할 수 있는 길이 봉쇄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영생은 육체적인 영생과 영적인 영생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완성될 천국에서는 부활의 몸을 입고 완전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타락한 인간은 영적인 영생과 육체적인 영생을 모두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4절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인간은 이 땅에서 영생을 맛보고 살다가 장차 주님 다시 오실 때 완전한 부활의 몸으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지금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함으로 앞으로 전개될 복음서의 중요한 핵심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생명을 얻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다른 이름은 영생입니다. 구원입니다. 빛의 자녀입니다. 축복입니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런데 사도 요한은 또 뭐라고 말씀합니까?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이 혼동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 우주에 하나님은 혼돈한 세상에 질서를, 공허한 세상에 채움의 창조를 그리고 어두움 가운데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런 혼돈하고 공허한 우주에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부여하신 창조의 질서는 무엇입니까? 빛입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혼돈하고 공허한 우주에 하나님은 가장 먼저 흑암을 몰아내는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을 먼저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온갖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빛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이 빛은 창1:14절의 하늘의 광명과는 다른 빛입니다. 태양과는 다른 빛이라는 것입니다. 이 빛을 어떤 빛이라고 해야 합니까? 흑암이 깊음 속에 있었던 칠흑같이 어두운 우주를 비추는 빛! 아마도 이 빛은 태양의 배후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빛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무질서하고 칠흑같이 어둡고 음습한 우주에 빛이 비추었을 것을 말입니다. 그 빛은 하나님께서 주신 최초의 질서이자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사도 요한은 태초에 계셨던 로고스, 곧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일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이 사람들에게 빛이라고 선언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한 인간들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생명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전개될 요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빛으로 나오는 일이며 빛의 자녀가 되는 일이라는 힌트를 줍니다.

요12:36절에서 예수님은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은 빛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46절에서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 그 세상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어두움과 빛으로 대조시키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 바로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빛을 받아들인 당신의 자녀들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의 사명은 어두움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어둠속에 스멀거리던 온갖 죄 성들과 음습한 욕망들이 빛을 비추임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러한 빛으로 세상에 오셨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빛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십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타락한 세상을 비추는 생명의 참 빛이십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깨닫지 못하더라.

그런데요? 이게 웬 불행한 소식입니까? 그 생명, 그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이 어두움에 비추었는데 그것을 빛으로 올바르게 깨닫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의 불행입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법한 자들의 손에 죽으시게 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빛이 비추었는데 어떻게 깨닫지 못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이들이 다른 것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빛을 빛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빛 가운데로 나아가게 될 때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종교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종교권력과 성전 이권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깨닫지 못하더라는 말의 정확한 번역은 이기지 못하더라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죄 가운데 사는 인생들에게 갑자기 빛이 비추니까 놀랐습니다. 자신들은 아직 그 생활이 좋습니다. 누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직 그것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두움으로 빛을 가리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수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예수를 올무에 빠지게 하려고 합니다. 논쟁도 해 봅니다. 따져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빛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빛 가운데로 나간 것이 아니라 빛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오늘 사도 요한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 말씀, 로고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과 함께 창세 이전에 시간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생명의 원천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분 안에서만이 인간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의 많은 모형들을 통해서 증거 하다가 이 땅에 육신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그 생명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이셨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사는 사람들은 빛의 자녀들입니다. 어두움의 일들을 행해서도 안 되고 어두움의 일들을 좋아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그 빛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세상은 그 분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빛이 비추었지만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기지 못했습니다.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증거가 이어집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아멘.

영접은 동행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믿음은 한 순간의 결단이 아니라 영접하고 동행하는 긴 시간을 담는 말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택하신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요한복음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되는 책이라는 사실과 이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긴 여정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 땅에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동안 우리의 생명이 더 풍성해지는 역사를 기대합니다. 특히 우리의 2017년이 성소에 들어갈 때, 즉 주님과 깊은 사귐 가운데 있을 때 깨어짐의 순간을 경험하고 그 깨어짐의 순간이 영적인 풍성함이 되어 생명을 더 풍성하게 드러내는 귀한 한 해 이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빛이신 옛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증거 되는 한 해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동행한 세월이 얼마나 되셨습니까? 그 동행의 시간동안 우리는 얼마나 생명이 풍성해졌습니까? 타성에 젖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고 더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오늘, 한 해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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